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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Jul 26. 2021

아들, 이번엔 어디로 떠날까?


첫 출산 후 집콕 육아에 지친 나는 매일 달력에 x자를 치는 낙으로 살았다. 아기가 150일이 되면 1시간 비행 정도는 소화할 수 있겠지?! 막연한 희망을 품고 제주도 갈 날만 기다렸다. 초보 엄마 아빠로서 아기와 떠난 첫 여행은 여러모로 부족했다. 집에서 쓰던 육아템을 다 챙겨 다니지도 못하니 답답함도 컸다. 체크아웃해야 하는데 급하게 똥기저귀를 갈아야 한다든지, 모유 수유할 장소가 없어서 진땀을 뺀다든지, 침대에서 재울 수 없어서 바닥에 깔 이불을 추가로 요청해야 하는 등… 그러나 여러 번의 난감한 상황들을 순발력을 발휘해 극복하면서 스스로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육아에 대한 강박을 떨쳐내 보았다.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다음 여행 계획을 세웠다. 첫 여행을 무탈하게 마쳤다는 자신감에 좀 더 용기를 내볼 생각이었다. 2시간 소요되는 중국 상해 여행. 아기가 300일이 될 즈음, 2주간 여유 있는 일정으로 친정식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다만 해외여행이라 사전에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당시 아이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였기에 여행기간에 필요한 이유식(하루 2번 x 14일)도 미리미리 만들어 얼려놓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건 아이 여권 만들기. 낯가림이 시작된 아이와 여권 사진 찍는 일은 큰 일이었다. 작가님을 보자마자 울어버린 아이. 어르고 달래며 겨우 찍었으나, 눈에 고인 눈물이 문제였다. 다행히도 작가님의 포토샵 기술 덕에 감쪽같이 눈물은 걷어내고 말끔한 사진으로 재탄생하였다. 구청에서 아이의 여권을 찾은 날, ‘엄마인 나는 스무 살에야 만든 여권을 너는 돌이 되기도 전에 만들었구나’ 싶어 부러웠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첫 해외여행을 떠났다.


걷지 못하는 아이와 여행 힘들지 않나요? 묻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여행 내내 아기띠로 열심히 안고 다니려면 허리도 아프고 땀도 많이 난다. 그러나 당시 나에겐 힘들다는 생각보단 집콕 육아를 벗어난 기쁨이 컸다. 감사하게도 아기를 돌봐주는 친정식구들 덕에 신랑과 단둘이 도심 이곳저곳 부지런히 여행하며, 그 순간을 만끽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여행은 17개월 아이와 미국 동부 한 달 여행이었다. 마침, 회사에서 포상휴가 지원을 받아 무모한 계획을 세워봤다. 아이가 24개월이 되면 여행 비용이 더 드니, 그전에 티켓 비싼 곳도 가보자는 결심이었다. 최소 13시간 반 소요되는 비행이라 밤잠 자듯 저녁 티켓을 끊었다. 그럼에도 자리가 편치 않다 보니 자는 둥 마는 둥 하며 장시간 비행에 녹초가 되었다. 도착 후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13시간의 시차였다. 낮과 밤이 바뀌는 터라 어른도 힘든데 아이도 고생이었다. 밤이라고 말똥말똥한 아이를 무조건 재울 수도 없고, 낮인데 꾸벅꾸벅 조는 아이를 흔들어 깨울 수도 없는 노릇.


그때의 여행으로 제대로 깨달은 것은,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가져야 즐거워지는 여행이라는 것. 그렇게 우리는 순간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메릴랜드, 워싱턴, 보스턴, 뉴햄프셔, 뉴욕,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도시들을 차례대로 여행하면서 약속된 지인들을 만나거나, 가족만의 시간을 즐겼다. 감사하게도 아이도 유모차와 카시트에 잘 타 주었고, 낯선 환경임에도 무난히 받아들여줘서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 이후의 여행은 어디든 가볍게 떠날 수 있을 만큼 어느 정도의 여행 스킬이 쌓인 듯하다. 티켓팅의 기준이 되는 두 돌까지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여행을 다녔다. 그래서 두 돌 직전 떠난 일본 오키나와 3박 4일 여행은 아이와 시댁 식구들 대부분 4월 생일이라 겸사겸사 모두에게 생일선물 같았다. 이 여행으로 아이는 삼촌과 두터운 라포를 형성하며 여행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가 태어난 후로는 틈틈이 태안, 목포, 공주, 양양, 평창 등 국내 여행을 다녔다. 작년 여름 네 가족이 함께 캐나다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으나, 아쉽게도 코로나로 무산되고 말았다.   


둘째가 걷기 시작하고 존재감이 제대로 드러낼 무렵인 작년 가을, 우리 가족은 특별한 여행을 떠났다. 충주의 한 오두막. 시골집 정원에서 엄마의 층간소음 잔소리를 털어낼 수 있었고 오래간만에 출근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 아이들에게도 해방감을 주었다. 첫 째는 자신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여행코스에 반영했고, 원하는 코스로 짜인 여행에 더 애착을 보였다. 마지막 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집에 돌아온 후에도, 자기 전 누워서도, 여행이 끝난 아쉬움에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그런 아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두 달도 채 되기 전 다시 그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만족하니?) 아이들의 의사가 분명해지니 정해진 계획보다는 네 가족이 하나 되는 것에 맞춰 여행을 떠난다.


 여행마다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 똑같은 일상에서 사진을 찍어보면 아이가 한 뼘 더 자랐구나 느낀다. 여유가 묻어나는 미소 때문인지 세상을 품은 눈빛 때문인지 더 성장한 아이의 모습이 낯설다. 오늘도 나는 여름휴가를 떠날 곳을 찾아본다.


아들, 이번엔 어디로 떠날까?


아이에게 물어보면 그동안 갔던 여행 숙소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곳으로 또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 다양한 경험을 선물하기 위해 열심히 검색 중이다. 장소와 숙소만 정하면 그다음은 아이들의 의사대로 짜인 스페셜한 여행이 될 테니까, 이번엔 또 어떤 여행이 될지 기대된다.


아둘, 너희가 경험한 모든 세상들을 넉넉히 품는 어른으로 자라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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