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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Sep 09. 2021

아래층 아줌마가 우리 집 벨을 누른 이유



아들 둘을 키우며 층간소음 이슈에 민감한 나는 매일 아랫집이란 단어를 입에 달고 산다. 하루에도 열 번 이상 아이들에게 “지금 아랫집 잘 시간이야!” “그렇게 뛰면 아랫집 아줌마가 싫어해!” “아랫집에서 올라온다!” 수시로 아랫집을 언급한다. 이것은 마치 옛날 전래동화에서 울음을 멈추지 않는 아이에게 “호랑이가 나온다! 어서 뚝 그쳐!”라고 훈질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무튼 이렇게 일명 층간소음 강박증에 빠지다 보면, 단순히 사람이 사는 사회가 왜 이리 강퍅한가를 넘어 전반적인 한국 건축을 개선해야 한다근본적인 주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하루  엄마로서 가장 바쁜 타이밍은 등원 직전과 하원 직후이다. 그중에서도 아이들 하원 이후에는 한가로울 새가 없다. 어린이집 가방 정리부터 저녁 준비까지 엄마의 손이 부지런해져야 하는 시간이다. 하루는 때마침 마트에서 장본 것까지 배달이 와서 서둘러 냉장고에 정리를 하고, 정신없이 저녁에 먹을 치즈 브로콜리와 돼지고기 장조림을 만들 재료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때,


띵동



갑자기 벨이 울렸다. 이 시간에 웬 벨인가 싶어 당황함도 잠시, 아이가 현관문을 벌컥 열어버렸다.


“안돼, 열지 마! 누군지도 모르잖아!”


아이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그때,


“아랫집이에요”


아래층 아줌마의 목소리였다. 문을 빼꼼히 열고 쳐다보니, 아줌마가 서있었다. 층간소음으로 긴장되어있던 나는 그 사이 시끄러웠나 아이들 행동을 되새김해보았지만, 아줌마는 웃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이거 애들 주라고, 여행 다녀오면서 사 왔어요”


쭈뼛쭈뼛 정약용 박물관에서 사 온 듯 보이는 연필 다섯 자루 세트를 건네주었다.


“어머, 너무 예쁘네요. 여행 다녀오셨어요?”

“네, 다녀오면서 바깥양반이 애들 주면 좋겠다고 그래서 사 왔어요. 공부할 때 쓰긴 좀 불편할 수도 있어 보이지만…”

“너무 예쁘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대단한 선물은 아니었지만, 아랫집 가정이 우리 가족, 특히 아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눈물이 순식간에 가득 고였다.

아줌마의 미소가 오늘따라 더 화사해 보인 것도 그 때문일까? 거듭 감사 인사를 하고,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아줌마의 뒷모습을 보며 현관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한참 동안 연필 자루를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은 서로 좋아하는 색을 갖겠다고 난리였지만, 나는 뭐라도 좋았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초보 엄마로서 긴장이 탁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주변 분들의 돕는 손길, 애정 어린 마음, 응원의 메시지는 큰 힘이 된다. 이 동네로 이사 와서 산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이제 조금씩 이웃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안부를 물을 정도의 단골이 된 가게도 생기고, 지나다니다 보면 낯익은 얼굴들도 제법 많아졌다.


아이들 때문에 생활이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히려 반대다.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아이들 덕분에 서로 손을 내밀 수 있게 되니, 훨씬 더 풍요로운 이웃 관계가 되고 더 즐거운 동네 생활을 누릴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을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소중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점점 더 확산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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