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이 어려운 나에게
얼마 전 나의 아이는 자기 전에 책을 읽지 못했다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많은 나는 나의 아이 또한 눈물이 많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책을 읽지 못한 일이 그렇게 슬픈 일인가.
벚꽃이 흩날리던 4월의 봄날, 차창 밖으로 하얗게 흐드러진 벚꽃을 보며 아이는 노래를 불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흥얼흥얼 단순한 자작곡이었다.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는 들을 수 없는 그런 노래 말이다.
그것도 부족해서 나보고 동영상을 찍어 저장해 놓으란다. ‘봄이 오고, 벚꽃, 개나리도 피고, 봄이 왔네요. 예쁜 예쁜 봄아 봄아 넌 어디서 왔니, 벚꽃이랑 개나리는 왜 예쁘게 폈을까.’
그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다가 아이 모습이 너무 에뻐서 내 마음에 그 모습을 저장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아이는 작은 기쁨에도 크게 반응하는구나. 그래서 작은 슬픔도 그렇게 크게 받아들이는구나. 유독 눈물이 많은 게 아니라, 기쁨도 슬픔도 자연스럽게 표현했을 뿐이구나.
어린 시절 나는, 기쁨 앞에 항상 망설였다. 내 안에 피어난 조그만 꽃과 같은 기쁨 앞에서.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면 기쁨이 도망갈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말로 그 작은 기쁨이 밟히도록 놔둘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기쁨을 숨겨놓았다. 꽁꽁 감싸서 아무도 볼 수 없게 숨겨버렸다.
여전히 기쁨이 어렵다. 나는 그 기쁨을 나누지 못하고 혼자서 몰래 방 안에 앉아 그 기쁨을 곱씹는다. 그 순간은 그래서 자주 외롭다.
오늘도 아이를 본다. 너는 나를 닮지 않아 다행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