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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생활자 Jul 21. 2020

원주민 vs 이주민 2편

공사할 때 내가 천만원씩 줬어

작년에 함께 글쓰기 수업을 들었던 경기도 H시의 10살 터울 문인은 지역 문예지를 발행하고 있었다. H시도 내가 사는 양평과 비슷하게 새로운 이주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형태였다. 그녀는 지역의 후원을 받아 발간하는 문예지의 경우 글 쓰는 작가 또는 내용에 있어서 원주민과 이주민의 비율을 정해서 글감부터 구분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또한 몇 퍼센트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원주민의 비율이 더 많아야만 했다. 그 비율을 유지하는 것이 아주 민감한 사안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 다른 지인은 최근 지역의 홍보영상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행사의 일환으로 동네마다 문화적 차원의 지원금을 요청하는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의 논의 또한 원주민과 이주민의 지원금 비율이 큰 이슈 중 하나였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원주민은 부족한 것 많은 이 지역에서 오래 버티고 살았던 만큼 받아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남편은 몇 달 전 동네 어귀에서 주인이 있는 개에게 다리를 물렸다. 바지가 너덜거리게 찢어진 걸 보니,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그는 출근을 위해 마을버스를 타려고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그 날 따라 집에 묶여있던 개를 주인이 풀어준 모양이었다. 남편은 개인적으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에게 그 개의 주인을 물었다. 그 날 저녁 그 집을 찾아가서 한창 남편이 사정을 얘기하는데, 집주인은 현관문도 열지 않고 '당신이 조심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며 집 안에서 큰 소리로 떵떵거렸다. 남편이 '치료비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사과하고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말하는 게 맞지 않느냐'라고 말하자 그제야 얼굴을 내밀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편견을 갖고 싶진 않지만, 개 주인은 주변에서 작게 농사를 짓는 원주민이었다. 어쨌든 다리를 물린 사람이 우리 아이 같은 어린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얼마 전 남한강이 살짝 보이는 땅을 보러 갔을 때, 토목공사를 마친 땅 주인은 말했다.



"이거 지을 때, 내가 주변 주민들한테 천만 원씩 줬어. 그러니까 집 지을 때 돈 달라고 하면 내 얘길 해요."



어이없는 얘기지만, 외지인이 원주민 마을에 집을 짓게 되는 경우 이런 일은 비일비재한 듯하다. 그래서 부동산의 시골 매물 중에는 '외지인으로 구성된 마을'이라는 설명이 곧잘 붙는다. 천만 원이 껌 값도 아니고 어떻게 그냥 줄 수 있느냐 싶지만 원하는 금액을 못 받는 경우, 갖은 이유로 구청에 민원을 넣어 공사를 방해하기 때문에 공사일정이 길어지느니 대충 돈을 주고 무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들었다. 또는 돈 대신 원주민 본인 집의 여러 공사를 부탁하는 경우도 많다고. 사생활 침해가 없도록 담장을 세워준다거나, 비포장 도로를 포장해준다거나 하는 내용이다. 공사를 해주고도 좋은 소리 듣기는 힘들다고 했다.


얼마 전 우리 동네에서 큰 공사를 진행하는 업자 중 한 분이 마을 초입에 집을 지어 본인이 입주를 했다. 그러고는 가까운 펜션을 빌려 마을 주민들 전체에게 집들이로 출장 뷔페를 불러 식사를 대접했다. '주민 전체에 집들이를 하다니, 사장님 통도 크다.'라고 생각했지만, 집들이 현장에 가보니 우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사 관계자들과 원주민들이었다. 내가 입주한 타운하우스 사람들은 모두 쏙 빠져 있었다. 우리 가족은 동네 초입의 원주민 아주머니가 알려주셔서 인사 차 겸사겸사 갔던 것이라 본래의 목적을 깨닫고 빨리 자리를 떴다.


전깃줄만 없다면, 알프스만큼 아름다운 우리 마을


생각해 보면, 원주민들이 수십 년을 터전으로 잡고 살아온 곳에 시끄러운 중장비를 가지고 들이닥친 서울 사람들이 반가울 리 없다. 서울에서 나름 가까운 이곳에 돈을 벌겠다며 덤비는 부동산 업자와 건축업자는 또 얼마나 많겠는가. 어렵게 농사지어서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이 10년 만에 수 억을 벌었다는 걸 알았을 때 느낄 허탈감은 또 얼마나 클까. 보상심리의 시작은 아무래도 그런 이유에서 시작되지 싶다.


돈을 벌려는 업자가 아니라, 좋은 풍경에 힐링하러 전원주택에 들어온 서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농사짓고 소 키우는 원주민의 생계가 걸린 곳에 외지인들은 놀고먹고 쉬러 온 것이다. 주말마다 바비큐를 굽고 정원을 가꾼다며 시끄럽게 잔디를 깎는다. 반갑다며 떡 돌리는 사람도 거의 없다. 하지만, 얄미운 외지인들은 까다로운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눈이 올 때 대처하는 방법까지 크고 작은 모든 문제에서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다고 마을 회의에 자주 나가거나, 한 달에 한번 있는 동네 청소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도 아니다. 조용하게 살고 싶어서 10~20년 전 이 곳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10가구가 함께 살던 조용한 마을이 50세대가 넘게 거주하는 규모 있는 마을이 되는 게 반갑기만 하진 않을 것이다.


공사를 핑계로 돈을 받아 내는 폐해는 없어져야 하겠지만, 원주민과 이주민이 함께 섞이기까지는 이주민의 노력과 함께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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