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택을 받는다는 것
올해 초 집에서 들렸던 쥐 소리 이후로, 언젠가 다시 쥐가 들어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매번 사람을 부를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작은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을 찾았다. 아직 몸집이 작은 어린 고양이였다. 평소 같았으면 훠이훠이 내쫓았을 텐데, 쥐가 나왔다는 말에 고양이를 키우라던 주변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이 참에 길냥이가 우리 집을 자주 찾아도록 하는 게 어떨까?'
애견인이나 애묘인들이 들으면 질색팔색 할지도 모르지만, 길냥이를 잘 길들여서 우리 집에 찾아오게끔 한다면 쥐 문제는 쉽게 해결이 될 터였다.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서도 종종 길냥이에게 먹이를 주곤 했던 터라, 길냥이가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집에 있던 멸치와 밥을 잘 섞어서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 주니 어린 고양이는 사람을 무척 경계하면서도 우리가 준 먹이를 반가워했다. 금세 한 그릇을 비우고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그 이후로도 어린 고양이는 참새 방앗간처럼 우리 집을 종종 들렀다.
나의 아이는 길냥이라도 우리 집에 있으면 우리 고양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이름을 붙여주자 말했다. 처음 그 녀석이 무척 말랐던 터라, 이름은 '말랑이'가 됐다. 조금씩 살이 찌면서 아이는 '몰랑이'가 더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녀석은 우리 집 '몰랑이'가 되었다. 물론 다른 집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듯하다.
어느 날은 무척 잘 먹다가도, 어느 날은 메뉴가 맘에 들지 않는지 먹지 않기도 하길래 길냥이 여러 마리를 극진히 대접하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사료를 준비하는 건 어떠냐 얘기를 들었다. 물론 사료도 안 먹는 녀석들이 있지만, 다행히 몰랑이는 어떤 사료를 줘도 그럭저럭 잘 먹었다. 급하게 나가야 하는 아침에는 대부분 사료를 주고 저녁에는 치킨이나 참치, 생선이나 돈가스 등 먹고 남은 것을 줬다.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역시 참치다. 추릅 추릅 먹는 모습을 보면, 자식 키우듯 가슴 한구석이 뿌듯하다.
그렇게 어느 순간 몰랑이는 우리를 선택했고, 이제는 끼니때마다 우리 집 거실 창문으로 눈에서 레이저를 쏴 대면서 우리 가족을 바라본다. '오늘은 딴 집 가서 먹어'라는 생각으로 소파에 누워있다가도, '밥 내놔'와 같은 레이저 눈빛에 못 이겨 사료를 부어준 적도 여러 번이다. 남편은 이렇게 길들이다 보면, 언젠가는 몰랑이가 배 까고 누워 애교를 부릴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릴 때 길들인 길고양이가 한 이불에서 잠도 자고 집에서 새끼도 낳았다니 그렇게 생각했을 만도 하다. 하지만, 몰랑이는 길냥이의 습성을 버리지 않고 여전히 동일한 거리를 유지한다.
한 번은 밥 먹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서 머리를 만졌더니 어찌나 하악질을 해대던지. 가끔은 너무 귀여운 발과 배, 머리를 만지고 싶지만, 나는 몰랑이가 유지하는 그 거리감이 은근히 편안하기도 하다. 창문을 두고 서로를 바로 볼 때의 은근한 교감이 좋다. 녀석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고상하게 꼬리를 발목에 턱 얹은 그 모습을 볼 때면 그 녀석은 동물 이상의 생명체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애묘인 비슷한 길냥이 집사의 길을 걷고 있다.
사람이 됐든, 동물이 됐든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우리 집을 찾아준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 주택러들은 이런 길냥이의 간택을 은근히 기다리기도 한다. 그들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주는 사소한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몰랑이가 지낼 곳은 있을지 걱정이다. 박스로 집을 만들어줘야 하나 고민하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