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inking cloud Oct 23. 2021
좋은 입지의 신축 아파트. 어느 집 효자 이름이다. 아쉽게도 우리 집은 아니다. 엄친아는 엄마 친구 아들이 아니라 엄마 친구 아파트다.
신축 아파트만큼은 아니지만 원룸촌 안에서도 신축빌라가 더 인기다. 입지야 비슷비슷하니 월세를 오만 원 정도 더 내더라도 깨끗한 새 건물을 선택하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원룸촌 두 번째 방이 있었던 즐거운 하루가 신축 빌라였다. 살아보니 신축, 신축하는 이유가 있었다.
굴뚝청소부 이야기가 떠오른다. 같이 굴뚝 청소를 하고 난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일을 하다 얼굴에 검정이 묻었는데, 일을 끝나고 나와서 검정 묻은 사람은 동료의 얼굴이 말끔하니까 자신도 그렇겠거니 생각했고, 안 묻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검정이 묻었을까 봐 자꾸 자기 얼굴을 닦는 것이다. 그래서 검정 묻은 사람은 그대로 있고, 안 묻은 사람 얼굴은 계속 깨끗한 그대로라는 이야기다.
내가 딱 그랬다. 첫 번째 발렌타인 에서는 청소를 그렇게 하기 싫어했는데 즐거운 하루로 옮겼을 때는 소형 청소기까지 사가며 청소를 해댔다. 그때 처음 알았다. 원래 깨끗한 집이 청소도 하고 싶어 진다는 걸.
오래되고 지저분한 집은 청소하는데 힘은 더 들면서 청소한 표시는 안 난다. 깨끗한 집은 깨끗함을 유지하는데 큰 수고가 들지 않는다. 애초에 어지럽히지를 않으려고 하고, 간혹 청소를 며칠 빼먹어도 먼지만 좀 쌓였을 뿐 자세히 안 보면 더러운 줄 모를 정도다. 깨끗함이 내가 생각한 신축의 가장 큰 장점이다.
습기 관리에서도 차이가 난다. 신축 욕실은 샤워 후에 물이 빨리 마른다. 타일 재질 차이로 보인다. 구축은 여름 장마철이면 전날 샤워했던 물기가 다음날까지도 안 마른다. 며칠 지나면 욕실 구석과 세면대 실리콘에 까맣게 곰팡이가 핀다. 락스를 들이부어 보지만 곰팡이는 한 번 생긴 자리에 쉽게 또 생긴다. 그 꼴을 보고 있노라면 신축의 포세린 타일 (Porcelain Tile) 혹은 엄마가 저절로 그리워진다. 건물주 집에 내 돈 들여 갖다 붙이기도 싫고, 코딱지만 한 단칸방에 엄마를 데려올 수도 없고, 독립이라고 나왔는데 고작 욕실 곰팡이 때문에 다시 본가로 들어갈 수도 없다. 나는 독한 마음으로 독해 빠진 락스를 다시 들이붓는다.
단, 신축이 무조건 튼튼한 것은 아니다. 겉보기에는 깔끔해도 부실공사 내지는 날림공사가 의심되는 빌라들이 분명히 있다. 즐거운 하루가 그랬다. 신축의 장점을 누리고 살던 어느 날 문 밖에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계단 벽에 붙어있던 큰 타일 두 개가 떨어져 박살이 나 있었다. 사람이 없었던 것을 보아 외부 충격은 아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접착이 나빴나 보다 했지만, 내 방바닥이 그 타일처럼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푹 꺼지는 망상으로 한동안 트라우마를 겪었다.
신축 빌라는 등기부등본도 잘 봐야 한다. 대부분 부지나 건축물을 담보로 잡은 대출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백 프로 내 쌈짓돈을 들여 빌라를 짓는 건물주는 없다. 토지를 보증으로 빚내서 건물 짓고 보증금 받은 것으로 일부 갚고 월세 받아서 이자 내며 빌라를 유지한다. 공사 잔금이라던가 대출 제외한 본인부담 건축비등 목돈이 필요한 경우 가끔 전세 물건이 나온다. 건물주가 부자라면 상관없지만, 모자란 돈에 대출 끼워서 건물주가 되는 사람도 많다. 원룸러에게 대항력이 있건 없건 최우선 변제 대상 자건 아니건, 사람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빚 많은 건물보다는 빚 적은 건물이 낫다. 신축이든 구축이든 빚은 있다. 건물주씩이나 되신 분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있는 건물을 담보로 대출을 당겨서 더 큰돈을 굴리려한다. 구축은 감가상각이 어느 정도 진행되어있어 같은 입지라면 신축빌라가 대출이 좀 더 나올 수 있다. 내게 빚이 없어도 내가 사는 원룸이 빚이 많다고 생각하면 볼모로 잡혀 있는 내 보증금이 내심 걱정되게 마련이다.
부동산 문외한이 원룸촌을 전전하다 보니 알게 된 것들이다. 애초에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듣게된 경우라 이것밖에 모르고 있을 수도 있고,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그사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신축이든 구축이든 내가 살집에 대한 정보는 그때그때 각개격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