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thinking cloud Oct 23. 2021
원룸은 좁다. 방 한 칸으로서 좁은 건 아니지만 한 칸뿐이기 때문에 좁다. 모든 걸 다 때려 넣은 단칸방을 보며 양가감정을 경험한다. 속싸개에 꽁꽁 싸매진 아기처럼 폭 파묻혀 아늑하거나 가슴이 꽉 막혀 답답하거나.
집이 좁아서 괴로워하는 어떤 사람을 알고 있다. 주부인데 18평 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살고 있다. 내가 원룸 촌에 오래 있는 것처럼 그 주부도 살고 있는 집에서 오래 있었다. 어디 뭘 놔둘 데가 없다고 항상 한탄한다.
내가 18평 아파트에 혼자 산다면 운동장이라 하겠지만, 역시 사람마다 스트레스 안 받는 집의 면적 기준이 다르고, 집을 넓혀 이사하기가 녹록잖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넓은 집을 좁게 쓸 수는 있어도 좁은 집을 넓게 쓰기는 어렵다. 어려운 일을 해내기 위해서 나는 두 가지 사항에 신경을 쓴다.
첫 번째는 수납. 좁은 방의 수납은 기회비용이 열쇠다. 이것을 수납하기 위해 저것을 치워야 한다. 치울 데가 없으면 버려야 한다. 둘 다 버릴 수 없다면? 내가 발 디딜 공간을 버려야 한다. 같은 1㎡를 버려도 넓은 집에서는 데미지가 없지만 원룸에서는 그 버린 공간 때문에 밥상을 놓지 못할 수 있다. 공간의 상대성은 기현상도 발생시킨다. 같은 물건이라도 원룸으로 들어오면 부피가 커진다. 착시일 뿐이지만 넓은 집으로 옮기지 않는 이상 착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수납의 요령은 안 산다, 바꾼다, 겹친다, 쌓아 올린다 정도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안 사기다. 이 방법은 저절로 된다. 놔둘 데가 없어서 큰 짐은 거들떠도 안 보게 되니 무소유 까지는 아니어도 적게 소유할 수밖에 없다. 바꾸기는 기존의 소유물을 버리고 업그레이드된 대체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새 프라이팬을 샀다면 쓰던 것은 버리는 식이다.
겹치기와 쌓아 올리기는 가급적 추천하고 싶지 않다. 기껏 수납에 성공했더라도 그 뒷일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모른다.
겹치기는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큰 것 안에 작은 것을 수납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면 여행 캐리어. 부피가 크고 모양이 고정되어 있어 평상시에는 수납 효율을 위해 빈 캐리어 안에 잘 안 쓰는 모자나 계절 옷을 넣어둔다. 근데 갑자기 캐리어를 쓸 일이 생기면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을 다 꺼내야 하고, 캐리어를 다 쓴 후에 다시 다 넣어둬야 한다. 쌓아 올리기도 비슷하다. 쌓아 올린 층의 아래에 깔린 것을 한 번 꺼내려면 이것을 열고 저것을 밀어 두고 위에 올라간 짐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원했던 그것을 꺼내야 한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그 반대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짐 한 개 꺼내자고 온 방에 물건을 깔아놓을 일이 있다는 것을 미리 각오한다. 안 그러면 물건 꺼내다가 짜증이 이는 등 감정의 손상이 온다.
옷장의 옷은 또 어떠한가. 크지 않은 옷장 한 개에 사계절 옷이 다 들어가 있다. 옷만 있는 것도 아니다. 목도리, 모자, 안 쓰는 가방까지 들어가 있다. 옷이 많은 편도 아니지만, 절벽 지층처럼 켜켜이 쌓인 옷 중에 한 벌을 꺼낼 엄두가 안 나서 그냥 건조대에 걸린 옷만 입을 때가 있다. 옷이 있어도 못입는 것이다. 이럴 때는 옷을 쌓을 필요 없이 걸어두고 금방금방 찾을 수 있는 넉넉한 옷장을 강렬하게 소망한다. 행거나 비키니 옷장을 놓을 수 있는 여유공간이라도.
원룸은 움직임에도 제약이 있다. 이불킥 하면서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닐 수가 없다. 다리 쭉 뻗는 스트레칭을 할 때 자세를 잡을 수 있는 방향이 정해져 있다. 어째 좁아서 아늑함 보다는 갇혀있는 답답함이 점점 커진다.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수납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그다음은 트랜스포머다. 로봇이 변신하지는 않고 공간의 용도가 변한다. 방이 침실이었다가 일터로 바뀌고 공부방, 화실, 운동장, 식탁도 된다. 원룸은 방 한 칸에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니 공간 활용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러다 보니 공간 활용에 방해가 되는 짐은 즉각 처분 대상이다.
밥상에 국을 놓다가 침대 시트에 튄 적이 있었다. 시트를 세탁할 생각을 하니 짜증이 치밀었다. 그러고 보니 침대는 잠잘 때를 빼면 공간 활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갑자기 침대가 쓰레기로 보였고 나는 그날 침대를 버렸다. 넓어진 공간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바닥에서도 잘 자는 한국의 온돌 유전자가 감사한 순간이었다.
침대 처분을 계기로 다른 물건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소소하게 쌓인 쓰레기가 많았다. 귀찮을 때 쓰려고 둔 나무젓가락이나 일회용 숟가락, 반찬 사고 남은 플라스틱 반찬통이 눈에 들어왔다. 예외 없이 버렸다. 침대도 버렸는데 이제 와서 뭘 못 버리겠는가. 빈 공간을 보며 공허함은커녕 희열이 차올랐다. 나는 저장 강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구나. 문득, 저장 강박이 있는 사람에게 원룸은 약일까 독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 사람은 원룸도 꽉꽉 채우고 살까.
좁은 집에도 장점은 있다. 청소할 면적이 좁다. 물티슈 몇 장이면 방바닥 청소가 끝난다.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 장점을 못 찾아서 다행인지도 모른다. 자꾸 원룸의 장점을 발견하다 보면 평수를 넓히는 등의 발전 지향적인 집으로 옮겨가기가 어려울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