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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우 Jan 24. 2024

만날 인연이면 언젠가는 만나지겠지

지난 월요일이었다. 20년 만에 만나는 지인과의 약속이 있었다. 하루 전부터 만남이 기다려지고 설렜다.

약속 시간은 오후 6시 30분이었고 장소는 신대림역에 있는 어느 양고기집이었다. 며칠 전에 정해둔 식당에 예약을 해두어서 자리가 없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철만 타고 가는 시간을 계산해 보니 37분이 걸렸고 걸어서 이동하는 시간까지 넉넉하게 1시간이면 충분했다. 약속 시간에 거의 미리 가 있는 성격인 나는 그날도 2시간 전에 집 밖을 나섰다. 날씨는 정말 추웠다. 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매섭게 추운 날씨였다.

새로 산 카메라를 목에 메고 그분에게 줄 몇 가지 생각해 놓은 선물을 준비해서 길을 나섰다.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만큼은 춥다는 걸 느끼지 못했다. 만 18세 때 만난 사람을 43세의 중년이 되어서 20년 만에 만남이라니.. 사실 24년 만에 만남인 줄 알았는데 내 기억에 오류가 있었나 보다. 그분이 정확히 마지막 만남의 기억을 끄집어 내주셔서 제대로 수정할 수 있었다. 20년 만에 만남이었다.


신대림역에 5시 30분쯤에 도착했다. 태어나서 처음 와보는 곳이었다. 서울이고 역세권이다 보니 마침 퇴근 시간이 겹쳐 많은 사람들이 추운 날씨에 옷을 동여 메고 빠른 걸음으로 어디론가 향해 가는 모습들이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발을 동동거리며 손에 따뜻한 입김을 불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추운 날씨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좀처럼 사람을 만나러, 특히 사적인 만남을 잘하지 않는 나에게 이번 약속은 특별한 외출이었다. 지난주 월, 화 제주도 출장 때도 카메라를 챙겨 갔지만 이틀 동안 꺼내지 않았다. 이번 월요일, 그날은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도착해서 예약해 둔 식당에 예약을 한 번 더 확인한 후 카메라를 들고 추운 거리로 나왔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익숙해서 전문적인 카메라를 다루는 게 서투르고 어색했다. 이곳저곳 시선 가는 대로 셔터를 몇 번 눌러보다가 결과물이 영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전원 스위치를 꺼버렸다. 좋은 카메라로 찍으면 예술작품처럼 사진이 찍힐 줄 알았나 보다. 첫 술에 배가 부를 수 있겠냐만은 돌아와서 멋진 사진은 아니지만 내 기억에 한 컷이 되어 준 사진이라 생각하니 소중히 여겨졌다. 사진 속에는 그날의 기억과 냄새, 날씨, 감정 등 그 순간 많은 추억을 담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서 20년 만에 지인과 재회를 했다. 그 사이 그분은 결혼도 하고 아들 둘을 둔 엄마가 되어있었다. 첫째는 벌써 20살이 되었다고 했다.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 아나운서로 활동을 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직을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도 몇 차례 만남을 가진 기억이 있는데 아마도 그분이 결혼을 하고 연락이 뜸해진 듯하다.

예약시간 보다 20분 먼저 식당에 들어와서 몸을 조금

녹이고 미리 음식을 주문했다. 그분이 도착하면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을 타이밍에 맞춰서 조리도 부탁했다.

약속시간에 문자가 왔다. 식당 앞에 도착했다며 먼저 들어가 있어도 되겠냐는 문자였다. '고기가 구워지고 있으니 얼른 들어오세요.' 나의 답장이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문 열리는 종소리를 울리며 들어왔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소리 없는 미소로 먼저 인사를 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했다. 한참을 손을 잡고 '잘 지냈어요?' 라며 인사를 건넸다. 내 손이 따뜻했는지 아니면 다른 감정이었는지 서로의 손을 한참 꼭 잡고 있었다.  식사를 하기 전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진심으로 선물을 맘에 들어하는 표정이었다. 나 역시 뿌듯했다.

20년 만에 만남이었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어린 시절을 함께 한 동창생을 만난 기분이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회사 동료들과 할 수 없었던 얘기들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어서 오히려 편안했다. 6시 30분에 만나서 거의 12시 정도까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이 나를 만나러 오기 전에는 '무슨 대화를 할까, 어색하진 않을까..' 가벼운 고민을 했다고 한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어색함은커녕 어제저녁 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다시 이어지는 것 같다는 표현을 했다.

종종 만나자는 아쉬움 가득 담긴 인사를 하고 각자의 보금자리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꽉 찬 기분이 들었다.


그분으로부터 집에 도착하면 전화하라는 카톡 문자가 와 있었는데 확인도 못한 채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 잠이 들었나 보다. 오래간만에 밖에서 과음을 해서 몸이 감당을 못한 것 같다. 뒤늦게서야 카톡으로 답장을 하면서 그분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바뀐 걸 알 수 있었는데 그 프로필 사진을 보고 기분이 좋았다. 내게서 받은 선물들 사진으로 프로필 설정을 해놓은 거였다.


누군가 내게 그랬다. 인연이란 게 참 묘한 거라고.

맞다. 이 분과는 인연이었기에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또 다른 인연들도 만날 운명이면 만나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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