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선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인간은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장애라는 말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많은 선택 앞에서 수없이 갈등하며 살고 있다. 선택에 따르는 대가의 차이가 미미하다면 스트레스는 덜할 것이다. 한 가지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은 반드시 생겨난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한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나는 선택을 할 때 몇 가지 기준과 원칙이 있다. 우선 물건을 선택할 때의 기준은 이것이다.
‘다른 물건을 고르지 않은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한다.’
이런 기준이 있다 보니 물건을 선택할 때는 다른 선택 때보다 스트레스가 덜한 편이다.
그리고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도 있다. 사람을 선택할 때는 어떤 관계인가에 따라 선택의 기준이 좀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다음과 같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한다.’
지난 많은 기억을 되새겨보면 이 선택이 가장 후회가 없었다. 특히 사람의 관계는 한 번 맺어지면 물건처럼 버리면 잊어버리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신중해야 한다. 어쩌면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선택이 될지도 모르니까.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했다면 후회도 덜할 것이다.
어떤 계획을 세울 때 해야 하는 선택이 있다면 그 기준을 이렇게 세운다.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는 향후 5년, 10년, 그 이상 시간이 흘렀을 때 무엇이 더 나을까를 보고 선택한다.’
선택을 해야 할 때는 또 있다. 바로 기회가 왔을 때다. 나는 이 경우, 크게 고민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이 기회를 잡을까?’ ‘말까?’를 고민하지만, 나는 ‘다음에 하지 뭐.’ ‘다시 또 이런 기회가 오겠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기회가 왔을 때는 무조건 잡는다는 삶의 원칙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그 기회를 선택하고 시간이 흘러 그 기회를 잡은 데 대한 기회비용이 컸다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대가만큼의 가치 있는 경험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기회도 잡고 경험도 쌓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효과를 누린 것과 같기 때문이다.
경주마 조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을 고르는 것이다.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조교사로서의 삶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말 선택은 조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이기도 하다. 어떤 말을 선택하든 거기에 대한 대가와 책임이 따른다. 지난 십수 년간 매년, 적게는 15마리 많게는 40마리까지 내가 관리해야 하는 경주마를 선택해왔다.
그중에는 우수한 성적을 내고 조교사로서의 삶을 윤택하고 빛나게 해주는 경주마들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선택을 해야 하는 그 순간만큼은 이 선택이 최선이라 생각하지만,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분명 생겨난다. 그럴 때는 그 경주마와 함께 있는 모든 시간이 힘듦의 연속이 될 수도 있고 나의 조교사 이력에도 주홍글씨처럼 좋지 않은 이력들이 붙어 오래도록 나를 괴롭힌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었기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그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걸 누가 알 수 있을까.
이런 경우도 있었다. 두 마리의 경주마가 있고, 나와 다른 조교사가 가각 한 필씩을 선택해야 했다.
“네가 먼저 골라봐.”
마주는 나에게 먼저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난감했다. 선택해야 할 경주마들의 구체적인 정보 없이 단지 느낌으로 골라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한 마리는 수말이었고, 나머지는 암말이었다. 경주마의 경우 평균적으로 수말의 능력이 우수하기 때문에 주로 수말을 우선적으로 고르는 편이다. 나 역시 두 번 정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수말을 선택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뼈아픈 기억이지만 내가 고른 두 번의 수말은 평균 이하의 성적도 못 냈다. 반면, 나머지 남은 두 마리 암말을 선택했던 조교사는 어떻게 됐을까. 그 암말들을 시기는 조금 달랐지만, 그 시대를 대표하는 경주마로 활약했다. 지금은 과거의 일이 되었지만, 그 말들이 경주를 뛸 때마다 나는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자책도 많이 했다. 나를 아끼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단지 운이 따라 주지 않았을 뿐 내가 한 선택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며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기회는 누구에게나 다시 올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나를 응원해주었다. 그때는 누구의 위로도 응원도 귀에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그 순간들을 되돌아보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반대의 경우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선택을 해야 하는 그 순간에는 최선이라 생각하며 선택을 할 것이다. 매 순간 했던 그 선택이 잘한 선택일지 아닐지는 시간이 흘러야만 알 수 있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했듯 우리 삶의 대부분이 선택의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우리는 그 순간을 피해갈 수 없다. 매번 스트레스를 받으며 선택을 해야 하지만, 그 순간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반복해서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자기 점검과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그 선택의 결과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자만심에 빠져서도 안 된다. 언제나 그런 행운이 일어나는 것만은 아닐 테니까. 선택은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삶의 결과를 불러온다. 그 선택 앞에서 겸손해지고, 또 자기 성찰을 하며 나아갈 때 ‘선택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더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닐까.
삶은 후회와 만족의 반복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법을 깨달아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