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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신우 Jul 01. 2024

나 자신에게 당당한 삶을 산다는 것

명절이나 혹서기, 혹한기 약 4주를 빼고 1년 내내 주말마다 경기가 열린다. 그리고 경주 결과에 따라 평가를 받는다. 일주일 중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새벽 5시면 경마장에 출근해서 경주마를 훈련하고 돌봐야 한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매주 월요일 새벽 훈련을 끝내고는 제주도로 1박 2일 출장을 간다. 매년 경주마 수급을 위해서 제주도에 있는 목장에 가서 미래의 경주마를 찾고 좋은 말의 리스트업을 해놓는 일도 조교사의 핵심업무 중의 하나이다. 또한 열심히 제주도 목장을 돌아다니는 일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때로는 남들처럼 동남아 같은 멋진 휴양지로 휴양을 떠나고 싶어도 살아있는 생물을 관리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나로서는 그런 상상을 하는 것조차 직무유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속해있는 조직의 홍보이사의 직무를 맡고 있다. 1년에 한 번 있는 유럽연수 프로그램이 있는데 코로나 시기에 중단되었다가 올해 다시 그 프로그램이 재개되었다. 유럽연수는 경주마 관리사와 조교사가 함께 가는 합동프로그램인데 홍보이사를 맡은 내가 단장이 되어 팀을 인솔해 가게 되었다. 8박 10일 일정이 나왔는데, 스케줄을 보니 걱정부터 앞섰다. 자발적 의지로 계획해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없는 동안 채우지 못할 일들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걱정부터 앞선 것이다. 그러나 맡은 직책과 상황상 가지 않을 수 없었기에 복잡한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10일 내내 한국으로부터 로밍콜이 왔다. 그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이미 나는 ‘한국에서 유럽으로 놀러 간 조교사’가 되어있었다. 어디에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조차 기억에 잘 남지 않은 10일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서 다짐했다. 다시는 경주마 구매를 제외한 일로 해외에 나가는 일은 없으리라. 그 기간이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다짐을 하게 될 정도로 나의 이미지에 손상이 간 연수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속으로는 너무 화가 치밀었다. ‘나는 아무 데도 못 가는 사람인가?’ ‘설사 놀러를 간 거라 해도 그게 뭐가 잘못된 거지?’ ‘어쩌다 한번 해외 다녀 온 걸로 순식간에 ’노는 조교사‘로 만들어 버리다니. 이 짓도 못해먹겠다.’

이런 생각의 끝에 또 이런 마음도 드는 것이다. ‘좀 노는 조교사면 어때? 영원히 조교사로 살 것도 아닌데 내 인생도 즐겨가며 살아야지. 성적이 전부냐?’ 사실, 근래 성적이 좋은 조교사들을 부러워 ‘어떻게든 나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정도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너무 욕심내지 말자.’ 이런 내면의 소리로 나를 합리화했다.


나의 진심은 무엇일까. 때로는 쉬고 싶고, 놀고 싶다. 하지만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도 진심이다. ‘다 때려치고 놀고 싶다. 즐기는 게 인생이지.’라는 생각은 이러한 내 진심을 속인 채 현재 불리는 나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회피하는 마음이었던 것이다. 그런 나 자신을 발견하자 부끄러웠다. 모든 사람을 다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은 속일 수 없는데 말이다. 어떤 말을 할 때 그 말을 가장 처음 듣는 것도 나 자신이고, 그 말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이다.


지금 당장 벼락치기 하듯 일을 한다고 해도 바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 특히 이 일이다. 적어도 경주마를 수급하고 그 경주마들의 성적이 나기까지는 적어도 3년이 걸린다. 그리고 좋은 경주마 수급을 위해서는 매년 쉼 없이 뛰어다녀야 한다.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것도 내 진심이지만, 때로는 일이 하기 싫고 평가받는 것이 두려워 도망치고 싶기도 하다. 이게 나의 진심이다. 이러한 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다는 것이 겁이 나서 자주 다르게 포장하고 싶은 심정인지도. 나처럼 많은 사람이 한 번쯤은 이렇게 복잡한 생각 속에서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회피하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을까.

그래서 ‘자기합리화’라는 것은 어쩌면 내가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그걸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진짜 나의 행동과 말이 다르지 않는다면 굳이 합리화를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솔직할 때 인간은 가장 편안해진다. 나를 인정할 때 인간은 비로소 안정감을 느낀다.

싫은 소리를 듣고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나를 몰아세우는 건 분명 상처가 된다. 그래서 유럽에 다녀온 후 ‘다시는 해외 안 간다.’라고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을 쓰며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못하는 건 못한다. 부러운 건 부럽다. 싫은 건 싫다. 좋은 건 좋다.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떳떳하게 놀고, 쉬고, 성적도 잘 내는 그런 조교사가 되고 싶다.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면 좋겠다.  

나 자신과 더불어 남을 속이는 것은 결코 행복의 길로 우리를 데려가 주지 못한다. 뒤돌아서면 씁쓸함만 남을 뿐이다. 누구보다 나 자신은 모든 일의 실체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나를 속이는 말과 행동 뒤에 찾아오는 씁쓸함마저 없다면 그 사람은 진짜 병든 것일지 모른다. 깊은 병이 오기 전에,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연습을 날마다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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