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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n 잡은 루이스 Dec 30. 2021

변화가 필요한 시기를 맞이했다

내적으로 긁힌 상처와 표면에 새겨진 세월의 흔적, 변화가 필요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했다. 누가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난 늘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겼다. 학창 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들부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같은 취미나 관심분야로 만나게 된 동호회 사람들까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분이 쌓여 관계를 이루고 소중한 인연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 또 다른 부류들이 생겨났다. 같은 직장 속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동료들이 생겨났고 파트너십이라는 것을 맺게 되면서 공적인 관계를 이루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 같은 사무실에서 동고동락하고 있지만 사적인 관계를 넘어서지 못한 공적 네트워크일 뿐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두터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 와중에는 두꺼운 가면을 쓰고 친근한 척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다. 그게 어디든 빌런들은 늘 공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철저한 피아식별이 필요했다. 경우에 따라 '파트너십 하나로 맺어진 파트너사의 파트너들'이 회사에 존재하는 빌런보다 더욱 우호적인 경우들이 있기도 했다. 쉽게 말하면 그저 '내 편'인 셈이다. 누군가는 회사의 이익을 우선하고 대변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사람의 관계를 중요시하기도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자리를 거쳐간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 정년을 맞이하고 또 어떤 이는 다른 일을 찾겠다며 사직서를 던진다. 어쨌든 새로운 얼굴들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어느 날, 새로 부임한 리더가 회의실에 팀원들을 앉혀놓고는 소통과 책임감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관대함과 이룩하고자 하는 비전들을 잘 포장해 이야기 사이사이에 끼워넣기도 했다. 나쁘게 보지 않았다. 그 포부를 인정했고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을 가졌더랬다. 리더가 부임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내게 이렇게 말했다.


"휴대폰에 적힌 이름들 다 연락하시나요?"

"아뇨. 모두는 아니지만 하게 되는 사람만 하죠. 없어졌거나 바뀐 번호도 있을테구요”

" 골라내세요

“네?”

나이가 드니까 점점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는  같네요. 이유가 무엇이든 떠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니까. 그러니  골라내시고 적당히 챙기세요"


그러면서도 정성과 신뢰로 쌓아 올린 '공든 탑'을 잘 지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언젠가 내 또래의 파트너와 공(公)이 아닌 사(私)로 만나던 자리가 있었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그 시간 동안 서로 힘들고 괴로웠던 이야기들을 털어냈다. 몇 년간 공적으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사람 중 하나다. 그러니 그 자리도 내게는 충분히 가치가 있던 자리였고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술병을 비워낸 다음 날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숙취에 시달리며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나에게 '사람은 재산'이라고 말한 리더가 내가 오랜 시간 어렵게 쌓은 공든 탑을 그대로 무너뜨렸다. 그것은 자신의 안위를 위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발길질이었고, 매우 치사하고 더러운 이간질이었다. 이는 무서운 바이러스처럼 속까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리곤 그는 살짝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남남 아닌가요? 상황 봐줄 필요 없죠”




그 말을 들으니 입꼬리를 올렸던 그의 미소가 마치 어느 영화 속 괴물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았다. 역겨워서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손톱만큼이라도 관계의 빈틈을 빌미로 제공했다는 점에 좌절했다. 정의라는 말로 철저하게 포장된 가식과 거짓의 칼날이 내 등에 꽂혔다. 떨어져 나간 관계의 흔적들. 그 파편들을 하나둘씩 주워 모으며 분노하는 동안 리더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았다. 난 그날 이후 리더를 잃었다. 그리고 파트너도 함께 잃게 되었다. 내가 탄탄하게 쌓았다고 생각했던 신뢰가 고작 이것밖에 되지 않았다니, 자괴감이 들었다.

쓰라린 마음의 상처 위로 알콜을 부어댔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 어느 날엔가 지친 몸을 이끌고 트레드밀(러닝머신)에 올라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도 했다. 맹목적인 운동이 나를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 일이 있고 건강검진을 했다.

 

"치료를 요하거나 약을 드셔야 하는 수준까지는 아닙니다. 그러나 술도 줄이시고 운동도 많이 하셔야 할 거예요. 스트레스가 많으신가봐요. 몸 잘 챙기세요."

 

거울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과의 관계 회복을 위한 노력은 물론이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부터 내 얼굴에 새겨진 세월의 까칠한 흔적들까지, 그게 무엇이든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 느껴졌다.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쳐진 내 몸뚱이 하나를 그간 너무 돌보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검진 결과를 받고 한 달이 넘게 지났다. 술과 탄수화물, 당은 모두 줄이고 운동량은 조금씩 그리고 꾸준하게 늘렸다. 바쁘고 처절하며 피폐한 나날로 2021년을 보낸 것 같다만 낡고 쓰라린 기억들은 죄다 버려두고 기분 좋았던 추억만 가져가려고 한다. 


새해를 제대로 맞이하려면 지나간 것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그래서 한 번쯤 뒤를 돌아봐야 한다. 올 한 해 400km를 넘게 뛰고 또 걸었다. 비대면 마라톤을 하면서 전리품인 메달도 몇 개 거머쥐었다. 브런치에는 30개가 넘는 글을 썼더랬다. 대부분의 글은 티도 나지 않게 묻혀버렸고 또 어떤 글은 황송하게도 어느 공모전의 우수상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2022년에도 줄기차게 뛰고 걸을 것이며 가끔 도전이라는 것도 해보고 나름대로 정한 목표도 이뤄보고자 한다. 물론 조금씩 글도 쓰면서 하루하루 바쁘게 지낼 것 같다. 무너진 신뢰는 흩어진 파편들을 이어 붙여 다시금 쌓아 올리려고 한다. 그리고 더욱 겸손해져야겠다. 2022년의 끝자락에는 결코 후회 없이 살아왔음을 알렸으면 좋겠다. 내게도, 이 글을 읽게 될지 모르는 여러분에게도 충분히 기분 좋은 새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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