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IT기업 카카오 파헤치기
네이버는 2016년 3분기에 무려 1조가 넘는 매출액을 기록했다. '사상 처음 1조 원'이라는 기록. 그리고 내년 CEO 교체를 앞두고 있다.
작은 벤처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한창 성장하고 있는 네이버의 모습을 그 누구도 아닌 사용자로서 바라보고자 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카카오'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검색 점유율, 매출액 등 네이버를 추격만 하고 있는 카카오. 그들의 현재 위치는?
카카오도 2016년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지난 11월 10일 실적 발표 결과, 로엔엔터테인먼트 등 콘텐츠 매출의 성장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 증가해 매출액만 3천900억 원을 기록했다. 사실 현재 네이버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네이버가 2010년 즈음에 기록했던 매출액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분기마다 발표하는 매출액은 어떻게 실적을 반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굳이 그것으로 두 회사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큰 차이는 변하지 않을 듯하다.
카카오는 급변하고 있다. 이 글의 타이틀처럼 카카오는 '아직도 성장 중'인 모양새다. 포털도 해야 하고 O2O 서비스도 해야 하며 모바일에도 신경 써야 한다. 카카오를 두고 '포털'이라 말하기도 그렇고 'O2O 전문기업'이라 말하기도 뭐하다. 말 그대로 아직 성장 중인 IT기업이라고 말하면 어울릴까?
잘 알다시피 카카오는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전략적 M&A를 이뤄냈다. 그리고 한 몸이 되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시작
"인터넷 벤처 1세대." 다음을 창업한 이재웅의 수식어다. 이재웅은 1968년생으로 연세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2월 프랑스 유학 후 한국으로 귀국해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설립했다. 이때 연대 선후배 사이였던 이택경 씨가 존재했고 영동고 동기였던 고(故) 박건희 씨가 함께 있었다.
돈을 모으고 모아 5천만 원이라는 자본금을 만들어냈다. 강남의 작은 사무실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이 탄생했다. 처음부터 한메일로 출발했던 건 아니었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회사마다 사원들을 위한 인트라넷(intranet)을 구축하고는 하는데 다음커뮤니케이션 역시 이러한 인트라넷 구축 사업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이 사업은 한메일과 포털 사업으로 가기 위한 '초석(礎石)'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인트라넷 : 인터넷 관련 기술과 전 세계적 기술 표준 및 통신규약을 이용해 조직 내부의 업무를 통합하는 정보시스템을 일컫는다.
이와 더불어 이재웅 대표와 영동고 동기이자 중앙대 사진학과 출신의 아티스트 고(故) 박건희 대표의 탁월한 감수성과 작가적 소양을 바탕으로 '온라인 가상 갤러리(Virtual Gallery)'를 운영하기도 했다. 자신의 사진전 'Image, Images'나 광주 비엔날레가 그 사례다. 그가 29세가 되던 1995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
1997년.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 출발한 한메일(hanmail.net)은 당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계정을 만들고 메일 아이디를 물어보면 자연스레 툭 튀어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메일이 세상에 나온 이후 '첫 돌'이 되었을 때쯤 회원수는 50만 명, 그리고 1년이 조금 넘어 100만 명 회원을 돌파했다.
'평생 무료 이메일'이라는 장점이 있었지만 매일 같이 늘어나는 회원들의 메일 용량을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서버로 감당하기가 어려워졌고 때마침 98년 IMF라는 태풍도 맞이하게 되었다. 당연히 빚도 생겼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위기라고 생각했지만 호재가 생겼다.
이재웅 대표가 유럽 유학 당시 인연을 맺었던 독일계 온-오프 미디어 베텔스만(Bertelsmann AG)으로부터 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0억 원 투자를 받았다. IMF의 여파가 끝나지 않았던 99년 6월의 일이다.
사실 베텔스만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아주 튼실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당시 소위 잘 나가던 '야후'와 대적할만한 경쟁상대라고 생각했고 실제 그렇게 성장했으니 베텔스만의 올바른 선택이자 투자라 할 수 있겠다.
베텔스만은 다음커뮤니케이션의 2대 주주였지만 2002년 긴급자금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모두 처분했다고 한다.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한 몸이 된 카카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1999년 7월 포털 사이트로서 새로운 길을 열었다.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검색 서비스를 시작했고 다음세대재단을 설립과 미디어 2.0 인수 등 하나둘씩 포털의 면모를 갖춴나갔다. 한메일은 기본이고 카페나 미즈넷과 같은 커뮤니티와 쇼핑, 뉴스 등 박차를 가했다. 2004년 11월 회원수는 무려 2천만 명이었다.
2004년에는 일본 시장 진출과 함께 미국의 라이코스(lycos.com)를 인수하여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당시 다음은 라이코스를 미화 9천500만 달러, 약 1천45억 원 수준으로 인수했다. 라이코스의 주요 서비스는 검색 서비스, 블로그 서비스 등이었고 다음은 라이코스의 저력과 함께 성장을 꿈꿨다. 6년간 함께 했던 라이코스는 큰 호재로 작용하지 못했고 오히려 '계륵'같은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라이코스의 지분은 2010년 8월 인도계 광고대행업체인 와이브랜트에 매각되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테헤란로, 한남동을 거쳐 2012년 4월 제주도로 이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사옥과 주변 환경을 보고는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제주도 이전 이후 2년이 지났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더욱 큰 변화를 몰고 왔다.
2014년 5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소재의 플라자호텔에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무슨 일이에요? 긴급이라고 하시니 궁금하네요"
"두고 보시면 아실 거예요"
필자에겐 중요한 일이었고 이를 지인에게 물었다. 그리고 들리는 소식은 다음커뮤니케이션과 카카오의 합병 발표.
국내 포털 2위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이 당시 모바일 메신저 1위 업체인 카카오를 흡수 합병해 "다음카카오"라는 통합법인으로 출범한다는 소식이었다. 합병 형태는 기준 주가에 따라 산출된 약 1 : 1.556 비율로서 다음이 카카오를 흡수 합병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직원은 1천590명. 카카오는 약 550명이었다. 시가총액 1조 590억 원의 다음과 비교했을 때 2014년 5월 당시 카카오의 시가총액은 무려 2조 3천500억 원이었다.
이들의 합병으로 인해 코스닥시장도 흔들렸다. 숫자로만 합치면 약 3조 4천억 원대이니 당시 코스닥 시총 1위 셀트리온(약 5조 원)과 2위 기업인 파라다이스그룹(약 3조 3천억 원대) 사이를 뚫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이로서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창업자인 이재웅 시대는 가고 김범수 시대가 온 셈이다. 이재웅 대표의 지분율은 합병 이후 약 5~6% 정도가 되고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의 지분율은 약 22.2% 정도였다.
2014년 10월 1일. 이번에는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다음카카오 출범식이 열렸다.
"다음카카오의 새로운 출발"
말 그대로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 최세훈 다음 대표와 이석우 카카오 대표가 손을 맞잡고 합병을 알렸다.
다음카카오의 명칭은 합병 이후 1년도 가지 못했다. 2015년 9월 다음카카오의 사명은 '카카오'로 변경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렇게만 보면 다음커뮤니케이션의 타이틀은 그저 포털 사이트에 나타나는 이름만 보이게 될 뿐. '다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라는 보도가 우후죽순 나오기도 했다.
다음카카오의 사명이 카카오로 바뀌기 한 달 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케이큐브 벤처스의 임지훈 대표를 카카오의 사장 내정자로 발탁했다.
임지훈 현 카카오 대표는 카이스트 산업공학과 99학번 출신으로 엑센츄어 애널리스트를 거쳐 과거 NHN과 보스턴 컨설팅에서도 근무했다. 이후 소프트뱅크 벤처투자사인 소프트뱅크벤처스의 수석 심사역으로 근무할 당시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만났다.
"같이 일 한번 해보실래요?"
김범수 의장이 임지훈 현 대표에게 제안했다. 사실 김범수 의장이 임지훈을 눈여겨봤던 것은 카카오가 모바일 커머스 스타트업이었던 로티플을 인수할 때였다. 당시 로티플 담당 심사역이 임지훈이었다.
국민게임으로 엄청난 유명세를 탔던 '애니팡'에 초기 투자 역시 임지훈의 손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애니팡은 모바일 소셜게임 개발 업체인 선데이토즈가 2012년 출시한 게임으로 선데이토즈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선데이토즈 창업 3년 만에 2012년 매출액만 238억 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어찌 됐든 임지훈은 투자의 귀재라고 불렸다. 당연히 김범수 의장이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포인트다. 더구나 젊다. 임지훈 카카오 대표는 1980년생으로 2015년 9월 취임했다. 그의 나이 35세.
임지훈 카카오 대표 취임과 함께 기존 최세훈과 이석우 공동대표는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세훈 전 대표는 카카오의 CFO로 옮겨갔고 이석우 전 대표는 카카오의 경영자문 역할을 하다 2015년 11월 아예 카카오를 떠나게 되었다. 이석우 전 대표는 현 중앙일보의 디지털 총괄을 맡고 있으며 조인스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이석우 중앙일보 디지털 총괄이 자리를 옮기면서 중앙일보는 한참 디지털 인력을 대거 채용하기도 했다. 최세훈 CFO는 여전히 임지훈 체제와 함께 하고 있다.
카카오, 꾸준하게 성장 중
카카오는 여전히 성장 중이다. 뭐랄까.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면 새싹이 올라오고 햇볕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나는데 카카오는 아직 자라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회적으로 표현한다면 성장 속도가 다소 느리다고 해야 할까? 필자가 바라보는 개인적 시각은 그러하다.
일단 카카오는 사용자가 없어 쓸데없이 인력이 낭비되는 플랫폼이나 서비스는 과감하게 던져버렸다. 물론 누군가는 애착을 갖고 사용하겠으나 운영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하루빨리 문을 닫고 새로운 서비스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 올바른 정책일 것이다.
카카오토픽이 그랬고 다음 클라우드가 그러했으며 마이피플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어떻게 보면 사라진 흔적보다 새롭게 태어난 플랫폼이 더욱 많은 듯하다.
카카오페이, 카카오택시, 플레인, 카카오TV 그리고 지금 필자가 쓰고 있는 브런치 같은 플랫폼들.
기존 마이피플은 카카오와 서비스 영역이 중첩되었으니 당연히 폐지 수순이었고 카카오토픽은 2014년 9월 시작해 모바일과 포털을 잇는 시너지 효과를 노렸지만 출시 후 약 3개월간 다운로드 수가 50만 건에 그쳤다. 카카오토픽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카카오톡 채널이 등장해 각광을 받고 있다.
카카오톡 채널은 네이버도 관심을 보였던 서비스 중 하나다. 카카오톡은 수천만 명이 쓰는 메신저 앱인데 여기에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채널'이 생겼으니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네이버로서는 폭발력 있는 플랫폼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지난 8월 기준으로만 보면 채널의 월간 방문자 수는 약 1천300여 명 수준이었다.
11월 기준으로는 무려 2천600만 명에 이른다.
간혹 브런치의 글이 채널에서도 소비가 되는데 이때 들어오는 유입량도 꽤 높은 수준이었다.
더불어 필자가 열심히 쓰고 있는 이 브런치는 다른 블로그와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기본적으로 글을 쓰는 툴(Tool) 자체가 심플하고 사용하기에 꽤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브런치는 '작가'로 선정이 되면 바로 글 쓰기가 가능한데 괜찮은 글이다 싶으면 다음의 메인 또는 섹션별로도 큐레이션 되고 카카오톡 채널과 같은 플랫폼에서도 함께 소비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나 글 조회수나 공유수가 보이는 통계 수치도 꽤 직관적인 편이다.
필자가 카카오를 두고 '여전히 성장 중'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미 언론에서도 많이 다뤘던 내용들이다.
카카오의 임지훈 대표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O2O 서비스에 집중하고 로엔엔터테인먼트를 거액으로 인수하는 등 전체적인 볼륨(Volume)은 꽤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성장이지만 실제 매출액을 '까'보면 수익 사업에서 허덕이는 느낌이 든다.
포털의 주요 수익은 광고이지만 트래픽이 줄어들면서 매출액 또한 정체이거나 하락세다. 실제 다음의 PV는 2015년 대비 11% 하락, UV는 약 7% 하락했다.
O2O 사업의 경우, 대리운전, 택시, 헤어샵 예약까지 점점 확장 추세이지만 수익으로 연결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카카오는 임지훈 대표가 참여한 CXO팀을 구성하여 전체 서비스와 사업을 이끌고자 했다. 여기에는 홍은택 수석 부사장을 비롯해 최세훈 CFO(재무 책임), 박성훈 CSO(전략 책임), 신정환 CTO(기술책임), 임선영 포털 부문 부사장 등 소위 잘 나가는 정예요원들을 모아 카카오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카카오의 CXO 체제는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해체되었다. 홍은택 부사장은 카카오 메이커스 대표이사를 겸직하게 되었고 박성훈 CSO는 신원수 대표(기존 로엔 대표)와 함께 로엔엔터테인먼트의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다.
임지훈 체제의 1년이라는 시간. 이렇다 저렇다 하기엔 짧은 시간일 수 있다. 네이버의 김상헌 대표는 네이버 대표이사로서 8년이나 근무했다. 네이버는 그간 잘 버텨왔고 또 무럭무럭 자라왔다.
지금의 카카오나 과거 다음커뮤니케이션 역시 잘 자라고 있거나 잘 자라왔던 IT기업이 아닌가?
'과유불급(過猶不及)'
선택과 집중 그리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혁신 자체도 좋지만 너무 큰 변화는 사용자들의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반드시 리스크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을 테고.
임지훈 대표는 3분기 실적 발표와 함께 O2O 사업에 대해 언급했다. 카카오택시, 카카오드라이버, 내년 초 출시할 카카오파킹 등과 같은 이동수단과 관련된 O2O 서비스는 카카오가 직접 운영하고 나머지 O2O는 스타트업과 제휴해 플랫폼만 제공, 서비스 운영은 제휴사에 맡긴다고도 했다.
거대 포털의 골목상권 침해는 늘 있어왔던 논란인데 서비스 운영을 제휴사에 맡기면서 이를 해소하고자 하는 듯하다. O2O 사업은 아직도 말이 많지만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두고두고 봐야 할 듯하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카카오가 꽤 많은 노력을 쏟아붓고 있는 사업이니까.
카카오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과연 카카오는 어디까지 그리고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보는 눈이 많다는 건 그만큼 관심과 기대가 크다는 것 아니겠는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다. 카카오는 다음게임, 로티플, 카카오랩, 케이큐브벤처스, 포도트리 등 종속된 회사만 50개가 넘는다. 카카오와 카카오에 종속된 회사의 직원만 합쳐도 4천여 명이다. 늘 네이버와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인 듯하다.
여러 가지 내용의 기사들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지만 그게 다 '성장의 발판'이자 '계기'이자 '기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카카오의 사용자이자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카카오의 자체 성장과 더불어 스타트업이나 소상공인이 함께 숨 쉴 수 있도록 그리고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나갔으면 한다.
포털에 대한 지난 글 보기
https://brunch.co.kr/@louis1st/95
https://brunch.co.kr/@louis1st/77
※ 위 글은 카카오 실적 발표 내용 및 보도자료 등을 참고했고 개인적인 '사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