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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 Jun 07. 2020

길을 헤매고 있다면

걷는,사람-제주 올레 1-1코스

왜 등대는 보기만 해도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줄까. 정작 밤에 불빛 비추는 걸 본 사람은 별로 없을 텐데 말이다. 삶의 지향점을 잃은 이들이 많은 걸까.


'사람이란 본래 의지하고 붙일 곳 없이 단지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이리저리 나다니는 존재'라는 연암 선생의 말씀이 옳다꾸나.


칠흑 같은 밤, 출렁이는  이리저리 나다니던 배들은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은 등대의 불빛을 본다. 보통 등대는 빨간색, 아니면 흰색이다. 빨간 등대에선 붉은 빛이, 하얀 등대에선 푸른 빛이 나온다. 육지로 돌아오려는 배는 붉은 빛을 보면 등대의 왼쪽으로, 푸른 빛을 보면 등대의 오른쪽으로 입항해야 한다. 그것이 신호다.


길게 누운 소의 형상(?) 사실은 위에서 본 모습이 그렇다. 오늘은 올레 1-1코스 우도행이다.


관광지스러운 입간판. 천진항이 아닌 하우목동항에서 내린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길이는 약 11km 밖에 안되지만 오늘따라 날이 맑다. 하우목동항이 시작점이라면 우도봉에 오를 즈음엔 제정신이 아닐지도....


시작은 늘 경쾌하다. 연속 5일째. 하루 쉴까도 했지만 놀면 하나... 제주는 장마 시작의 싹수가 보인다. 걸을 수 있을 때 자.



물빛이 다른 여기는 어디? 우도에 오긴 왔구나.


감자 캐는 사람들.


파평 윤씨의 위엄. (소윤 vs 대윤... 지들끼리도 그리 치고받던 가문)


괭이밥... 고양이가 소화불량일 때 뜯어먹는다고. 고양이 소화제.


칼잎막사국. 잎이 칼처럼 생겼다. 생김새를 이름에 반영한다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정직한 일이기도 하다.


마늘이 참 실하군.


며칠 관광객들이 들이닥치더니 해안이 지저분하다. 누구는 봄날의 우도를 예찬했지만 난 한겨울 칼바람의 쨍하던 우도가 더 좋았다.


물론 이때가 아니면 이런 잔이들은 못 봤겠지만.


겹물망초. 요즘 너무 똑똑해지는 기분이다. 물론 제 불현듯 증발될지 모를 지식이건만.


꽃길만 걸으라면, 아마도 이런... 누군가의 집 골목인데, 집으로 갈 적마다 이리 주인님을 반긴다면 참으로 쓸 만한 녀석들이다.


이름하여 덩이괭이밥. (아마도 '덩이'로 나서?)

그러고보니 배 시간 때문에 아침도 못 먹었다. 내밥도 챙겨보자.


해물모듬물회를 시켰는데 하도 내용물이 많으니 국물이 안 보인다. 국물을 추가로 받았더니 양이 더 어마어마해졌다. 게다가 국수사리까지.... 물론 다 먹었다. 덕분에 뱃살은 그대로다.


식후경은 늘 아름답다.


외국인 관광객 다섯. 엄청난 수다로 여기까지 그 소리가 다 들린다. 물론 그들의 소리는 내게 음향효과... 저들의 발길이 멈춘 곳.


눈부시게 예쁜 꽃은 아마도 양귀비가 최고라는 나만의 생각.


양귀비와는 사뭇 다르게 소박하지만 돌길의  격이 확 달라진다. 분홍낮달맞이꽃. 이름도 소담스럽다.


잉무든장글


올것이 왔다.


태양은 작열하고, 배는 부르고, 오르막은... 오르막이다.


아득해도 끝은 있으니까.


고작 이런 걸 보겠다고. 어떻게든 내려다보겠다고.


인간은 스스로 바벨탑을 는다.


고작 이런 걸. (멋지긴 하다만)


날이 맑으면 저 지미봉에서 손을 흔드는 친구의 손길이 보인다고... 사실 21코스 지미봉에서의 이쪽 뷰가 훨씬 훌륭하다. 나는 우도가 예쁘다고 생각한적 없었으나 지미봉에서의 우도는 정말 아름답다. (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우도봉 꼭대기에는 등대공원이 있다. 세계 곳곳의 등대들이 전시돼 있다.



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 7대 불가사의라는데... (현대 지식으로 잘 이해가 안되면 불가사의지 뭐)


우도발 성산 샷.


저렇듯 빈틈없이 단단하게 쌓았어도 연암 선생은 한 소리했겠지. 저 돌은 다 누가 나르냐.


올레 리본 표지가 맞지 않아 잠시간 헤맨 곳. 지쳐 있을 때의 오류는 피로를 배가시킨다.


대학 때 친구들과 와서 서빈백사에 발담그고 낄낄거리던 생각이 난다. 참 아득한 일이다. 모래도 나만큼이나 낡아졌을까.


고단해도 끝은 온다. 아무리 전기렌트카들이 내 앞길을 훼방놓아도, 어설픈 스쿠터들이 씩씩거려도


파랗고 빨간, 빛을 따라가면 된다. 그게 신호다.


삶의 지표를 잃은 지금은

신호를 찾기 위한 감각을 벼려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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