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4km부터 길게는 20km에 이르기까지, 쉽게는 동네 한바퀴 산책 같은 곳에서부터 난감하기로는 하루에 봉우리를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하는 곳까지 다양한 제주올레길은 걷는 방식도 그만큼 여러가지다.
홀로 고독하게 걷기, 절친과 투덕이며 걷기, 모르는 사람들과 게릴라성 만남으로 걷기, 떼거지 관광으로 걷기... 첫번째와 세번째를 주로 해온 경험상 각각의 일장일단은 있으나 모르는 사람들과의 함께 걷기는 참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긴 하지만 이들은 '아카자봉(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아카데미 출신 자원봉사자)'이라는 하나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모인 까닭에 오다가다 만난 이들보다는 덜 경계하게 되지만 한 코스 걷기가 끝나면 미련없이 흩어지는 것이 그야말로 게릴라전을 연상케 한다.
코로나로 인해 2월 이후 함께걷기는 현재 중단된 상태. 6월부터 재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제주행 비행기를 탔지만 내가 도착한 다음날부터 다시 일정 취소. 방법은 둘 중 하나. 혼자 걷거나 일행을 구해서 걷거나. 혼자 걷는 참맛과 게릴라성 걷기의 재미는 막상막하 난형난제의 즐거운 경험을 주지만 개인적으로 즉석 동행을 구해 걷는 일은 복불복이다.
평균 15km의 길을 걷는 동안 나는 (평소와 다르게) 묵언수행이라도 하듯 입을 꾹 다무는 편이다. 생각이 많은 때는 생각이 많은 대로, 힘든 길을 걸을 땐 입을 열 기운조차 없는 대로. 혼자 걷거나 게릴라형 걷기에는 이 침묵이 가능하다. 여럿이 함께 걸을 땐 내가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대화가 그럭저럭 이어지기 때문이다. 허나, 둘이나 셋이 걷는 동안 침묵은 좀처럼 어렵다. 너무 많은 질문은 걷기의 고통을 더하고, 침묵의 지속은 괜시리 사람들을 (기분상) 무뚝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걷기 두려운 길엔 동행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가장 침묵이 가능한 길상대를 고르면 되겠다. 안면은 있지만 나를 침묵하게 놔둘것 같지 않은 상대와 두어번 보았지만 나를 침묵 속에 안전하게 놓아둘 것 같은 상대.. 당연히 후자 당첨~
오늘은 7-1코스다. 외진 숲길이 있어 홀로 걷기 쉽지 않다.
멀리서만 동경하던 한라의 품으로 들어간다. 늘 너른 옷자락을 펼친 것 같은 자태. 한라산을 볼 때마다 이호철의 <큰 산>이 떠오른다. 언제든 고개만 돌리면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산 아래 산다면 조금은 마음이 풍성해질까.
제주 곶자왈에는 거목과 덩굴나무가 한데 뒤엉켜 사는 모습이 흔하다. 나는 그걸 볼때마다 기생일까, 상생일까를 잠깐 고민하곤 한다. 거목을 타고 올라 목을 조르는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로 인해 거목도 심심한 삶을 면하는 건 아닐까, 하는 것이다. 7-1에는 곶자왈이 없지만 이런 나무들이 종종 눈에 띈다.
이젠 아예 대놓고 1박2일의 엉또폭포구나. 하긴 그 프로그램이 아니었으면 존재조차도 몰랐을 곳이다.
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이름만 폭포. 오늘도 허탕이다.
호젓한 숲길까지는 좋았다. 헌데,
슬슬 오르막 시작이다. 오늘은 고근산이라는 복병이 있다. (오르막 경멸자)
고개만 돌리면 이렇듯 쉬운 길도
다시 앞을 보면 고난한 수행의 길이 된다.
1월의 기억으론 그저 숨이 잠시 가쁜 것으로만 여겼건만.... 6월 땡볕의 오르막은 한걸음 한걸음이 너무나 힘겹다. 호흡은 거칠어지다 못해 아예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날씨 탓일까. 이상하다. 7,8월에도 걷던 나였는데 말이다.
산의 정상에 오른 등산객들은 종종 말한다. 이거지 이거. 이것때문에 산을 오르는 거 아니겠어?
하지만 처음의 흥분을 지난 감동은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을 따르나니.
날씨가 아예 맑지는 않지만 부속 섬들도 제법 보인다. 문섬, 범섬, 육안으로는 지귀도까지..
고근산 정상엔 아담한 분화구가 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저곳이야말로 생태보전의 핫플이다. 자연의 영양밥과도 같은 존재.
정상 왼쪽 켠으로 돌아들면 한라는 또다시 '짐지고 지친 자들 다 나에게 오라' 한다.
정상에서 땀을 들이며 과묵한 동행자의 짧은 사연을 듣는다. 6월말 정년이 예정된 어르신. 끝은커녕 무엇하나 진득하게 꾸준히 밀고나가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쉽게 로그아웃을 하고 리셋이 생활이 된, '이생망(이번생은 망함)'을 순순히 뱉어버리는 90년대생들. 이들은 평생을 한 직장에 올인한 아버지 세대를 몰이해한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버지는 그런 자식들이 못마땅하다. 끝까지 무언가를 지속한다는 것, 꾸준함의 미덕을 하찮게 여기는 생각은 어쩌면 아버지의 삶 전반을 부인하는 것만 같다.
본래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로 무산되고, 퇴직후 7월부터 또다시 계약직 업무를 맡아 6월 단 한달의 여유가 생겼다는 그는 올레완주를 자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으시단다. 정년을 마치고도 일자리를 마다않는 삶. 그 사이의 짬마저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열심세대. 그리고 욜로와 소확행의 세대. 불과 2-30년 사이에 삶을 대하는 방식은 참으로 판이해졌다.
내려오는 곁자락에 놓인 절 하나. 봉림사.
하논분화구. 제주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논농사 지대이다.
약 15km가 점심 포함 5시간도 안 돼 끝나 버렸다. 어라, 이건 놀멍 쉬멍 걸으멍이 아닌데...
숙소에 도착해 샤워가 끝나기가 무섭게 기절했다. 암고란(환약 같이 어여쁜 열매)도 없는 나는 3시간을 내리 잔 이후에야 비로소 살아났다.
평소 등산을 좀처럼 하지 않는 나는 산에 오를 때면 짧은 휴지를 자주 한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숨이 차는 고통을 참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짧은 휴지기를 통해 페이스를 조절하여 목적지까지 도달한다. 남들보다 조금은 늦어도 덜 고통스럽게 나름의 등산을 즐길 수 있다. 1월의 고근산행(7-1코스)은 일명 게릴라성 함께걷기를 통해서였다. 그땐 조금 뒤처져도 아무도 내게 신경쓰지 않았다. 평지에선 내내 앞서가다가도 오르막에선 늘 뒤처지는 나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덕분에 나는 내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오늘의 패인. 나는 무슨 일이든 한번 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세대와 언제든 리셋을 통해 처음으로 회귀하는 세대 사이에 있었다. 오늘 나는 전자의 페이스에 말려 내 페이스를 잃고 말았다. 낀 세대는 낀 세대만의 삶의 방식이 있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