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김모씨는 꿈을 꾸었다. 실타래가 온몸을 뒤 감아 엉켜있었다. 몇 가닥 엉킨 실을 겨우 풀어내도 아직 수많은 가닥들이 남아 어지럽게 꼬여있었다. 김모씨는 노란색 하얀색 고동색이 한데 엉킨 가닥들을 풀어내고 겨우 꿈에서 깼다. 참 이상한 꿈을 꾸었다 생각한 그는 평소처럼 늘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버스를 타고 벌써 5년째 다니고 있는 회사에 출근했다.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대학 시절 나름 원대한 꿈을 가지고 많은 것들을 하며 좀 더 멋진 미래를 그렸으나, 현실이라는 게 그렇지 뭐 - 그저 평범한 회사에 입사해 꼬박꼬박 월급 받고 저축하고 그러면서 살아오고 있었다. 청춘의 낭만은 거의 잊어버린 듯, 결국은 모두 현실에 굴복하고 마는 속물이라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꿈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했다. 김모씨는 여느 인간처럼, 그렇게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을 분류하고 또 분류하며 분류한 인간들 속에 똑같은 관계를 맺으며, 결국은 이렇게 사는 게 최선일뿐이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현실이라는 틀에 얽매여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렸을 즈음, 그 꿈이 그에게 찾아온 것이다.
여전히 평범했던 그날 밤, 실타래들은 여전히 그의 몸을 감고 있었다.
오늘은 여섯 가닥 정도 풀고 꿈에서 깼다.
그다음 날, 열가닥을 풀어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야근한 탓이라 피곤했는지 열두 가닥 정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실타래들은 수없이 엉켜있었다. 김 모 씨는 문득 오기가 생겼다. 혹시 가위나 칼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면, 꿈에서 가위가 나타나진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그날 밤, 가위와 칼을 양손에 쥐고 잠을 청했다. 그러나 가위가 생기기는 커녕 오히려 실타래들이 그의 몸을 조여와,
.. 김모씨는 그날 결국 가위에 눌렸다.
이제 김모씨의 일상 대부분은 그 엉킨 실들로 가득 차버렸다. 꿈이 아닌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실을 풀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해도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점점 다른 직원들이 김모씨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날이 갈수록 점점 기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실에 대한 집착증은 점점 병처럼 커져나갔고, 부쩍 잠을 일찍 청하는 날이 많아졌다. 엉킨 실을 풀어가면 갈수록 이상한 희열을 느낌과 동시에 점점 고지가 눈앞에 보인다는 일념 하나로 김모씨는 그렇게 날마다 꿈속 실타래를 풀어가고 있었다. 회사에 출근하는 시간조차 점점 아깝게 느껴졌다.
결국 꿈을 꾸기 위해 그는 사직서를 제출한다.
일주일째 누워있는 김모씨의 모습이 보인다. 그래도 뭐는 먹고 지냈는지 옆에 수북이 쌓인 컵라면들도 보인다. 고립된 방 안에서 퀴퀴한 냄새도 함께 풍긴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누워있는 그의 손이 아니 온몸 전체가 언뜻 봐도 미묘하게 뒤틀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꿈속, 그의 몸을 뒤덮고 있는 실타래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드디어 끝인가, 김모씨의 얼굴에 미소가 보이며 마지막 두 가닥의 실을 경건하게 풀기 시작했다. 이 꼬인 줄을 모두 풀어내면 드디어 이 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방감이 눈앞에 보인다. 드디어 김모씨의 손가락이 마지막 실을 풀어냈다. 그는 웃었다. 그 희열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마치 모든 업보와 고뇌에서 벗어난 듯한 자유로운 느낌이었다. 이제 평범한, 지루한, 그 현실에서 벗어나 어렸을 적 꾸던 꿈처럼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김모씨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다 풀린 실타래 대신, 팔과 팔다리와 다리 머리카락과 머리카락이 기괴하게 엉켜버린 그의 몸뚱이만이 침침한 방 한가운데 남아있을 뿐이다. 마치 그의 몸 구석구석 꼬일 수 있는 것은 모두 꼬여버린 것처럼,
그의 몸은 그렇게 또 하나의 실타래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