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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ec 21. 2015

너여서

내게 수긍되는 많은 일들

 실처럼 엉킨 연애를 하는 친구의 모습 또는 여자친구와의 다툼으로 속상해하는 친구의 모습을 볼 때면 우리는 하나같이 야, 헤어져. 라고 말했지만 재준은 우리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럴만도 했다. 재준은 우리와는 다르게 사랑을 품은 채 얘기를 꺼냈었지만, 우리는 친구인 입장에서 얘기를 꺼냈으니 감정이 다를 수 밖에.



 퇴근과 동시에 그룹채팅방 알람이 울렸다. 비 온다, 한잔하자. 철중의 말이 떠오름과 동시에 세명의 친구들은 좋다고 얘길했지만 재준은 여자친구랑 약속있어. 라고 대답했다. 마치 먹이를 눈 앞에 둔 맹수들처럼 세명 모두 앞다퉈 메세지를 보내며 그럼 언제 올 거냐, 그냥 빨리 와라. 라며 어수선한 글들이 쉼없이 차오르던 차 안 늦어. 사괄하든 끝을보든 둘 중 하나야. 라고 뜬 재준의 메세지에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모두 손을 다물었다.



 어느덧 시간은 9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자주 드나들던 동네 포장마차엔 늘 같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오늘로 깁스를 풀고 퇴원하는 동생을 집에 데려다 준 후에야 자리에 합류한 나는 점점 취해가는 철중의 옆에 앉으며 그만마시라며 이마를 밀었지만, 내 말을 들을 리 없는 철중은 헤벌레 웃으며 잔을 비워냈다. 매일 봐도 늘 봐도 이 새낀 정말 미친놈이지 싶었다.



 얘기는 잘했냐? 다시금 대화의 화살이 재준에게로 향했다. 대답대신 잔을 비워 낸 얼굴엔 아니라고 쓰여 있는 듯 했다. 나는 사랑이 별 거 아닌데..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딱 이건데, 가끔 재준이 보면 사랑이 다 인거 같아서 신기해. 안주로 놓여진 곱창을 먹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얘기하는 현중의 말에 잠시 잠깐 모두가 생각하는 얼굴을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랑이라는 부분에 대해, 시끄러운 녀석들 사이에서 지난 날을 되돌아봤다.



 돌이켜 보든 현재를 보든 내게 사랑은 늘 똑같았다. 지나 온 나이때를 들춰봐도 나는 그냥 한결 같았다. 별 다르게 특별했던 적도, 별 다르게 달랐던 적도 없었다. 내가 이상한건가 의심하며 굳이 아쉬워 했던 기억을 꼽았더니 참 별스럽다 싶었다. 그저 후회섞인 아쉬움은 20대 초반에 만났던 여자를 생각하며 아, 우리가 더 늦게 만났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다. 흐려진 많은 기억들 속에서 이상하게 그 때만 뚜렷해지니 위험하다 싶었다. 비도 오겠다, 술도 한잔하고 있겠다, 사랑타령하는 남자들과 있겠다. 이 때야 말로 정신 차리지 않으면 호랑이굴에 빠지는 건 시간 문제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때 마침 귓가로 취기 오른 재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데 나는 얘가 참 좋거든…. 내가 화나면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 하는 것도 귀엽고, 자기가 잘못하고선 미리 선수치고 눈 부릅 뜨는 것도 귀엽고, 자기가 잘못한 걸 알아서 사과는 해야겠는데 괜한 오기에 잡혀서 입만 삐죽되는 것도 귀엽고….





 사괄하든 끝을보든 둘 중 하나겠지. 라고 으름장을 놓았던 재준의 얼굴엔 어느새 미소가 번졌다. 사과도, 끝도 보지 않은 채 술집에 앉아 한다는 소리가 결국엔 여자친구 자랑이라니- 술에 취해 비몽사몽하던 철중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야이 미친놈아! 미움보단 부러움 섞인 부름에 재준은 그저 웃었고, 전화왔냐고 묻는 현중의 말에 문자. 라고 대답하며 잔을 비웠다.



 " 근데 뭐 때문에 싸웠냐? "

 " 어? "

 " 뭐 때문에 싸웠냐고, 이유가 있을 거 아냐. "

 " …. "

 " 사랑 싸움이네. "



 그제서야 연인들의 흔한 다툼에 속았다는 걸 알고선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넸다. 그런 와중에도 철중은 꿋꿋이 왜 싸웠냐며 재준을 추궁했지만 명확한 대답은 듣질 못했다. 분명 아무것도 안했는데, 한게 없는데도 왜 인지 졌다는 느낌을 가득 받은 현중은 잔 가득 술을 따르며 재준을 장난스레 노려봤고, 철중은 아예 재준에게서 등을 돌려 앉았다.



 " 근데 부럽다. "

 " 뭐가. "

 " 저게 다 애정이 있으니까 저러지, 없었어 봐. 진작에 헤어졌어."



 비 내리는 밤, 연애를 해도 문제 안해도 문제인 남자들의 이야기 꽃은 깊어갔다. 그래도 난 니가 부럽다. 다시금 들려오는 철중의 목소리에 재준은 웃었고, 민석은 괜히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뭐 보냐? 현중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얼굴이던 민석은 아무것도 아니라 대답하며 웃었다.



 아, 사랑이 단가? 민석의 말에 현중은 고개를 저었고, 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전히 술에 취한 철중은 아냐! 사랑이 왜 필요해! 라고 소리쳤다.


 혼잣말로 여럿을 생각하게 만든 민석은 제 말에 제가 걸려 조용히 사랑이란 단어를 중얼거리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메세지를 클릭했다.




 저게 다 애정이 있으니까 저러지, 없었어 봐. 진작에 헤어졌어.




 얼마 전 다툼으로 연락을 뜸하게 했던 여자친구에게서 온 메시지를 가만 보던 민석은 통화 버튼을 누르며 친구들 사이에서 조금 떨어졌다. 너 어디가? 곧장 들려오는 현중의 목소리에 손을 들어보인 민석은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애꿏은 돌을 발끝으로 이리저리 돌렸다.



 " 민석아! "

 " …정말 미안해? "

 " …응. 정말 미안해. "




 근데 나는 얘가 참 좋거든…. 내가 화나면 풀 죽은 목소리로 대답 하는 것도 귀엽고.




 늦은 가을 밤.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닿았고, 내 마음으로 네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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