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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Aug 14. 2016

wave

 음악 들어 보자. 커피를 마시며 스튜디오로 들어서던 유권의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했다. 앉은 의자에서 고개만 젖혀 유권의 얼굴을 확인하던 해찬은 못잤어? 라는 제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을 보며 대답대신 엔터 버튼을 눌렀다.


 " 확실히 그루브한 느낌이 들어가니까 낫네. "
 " 진영이도 전보다 지금이 낫대. "
 " 감독이랑은 통화했어? "
 " 미팅 중이래, 다섯시 안엔 전화준다던데. "
 " 그 감독 한 까칠하던데 잘 넘어가려나 모르겠네. "
 " 화해해. "
 " 엉? "
 " 지의진 아파. 전화 안해봤어? "


 살짝 민감해진 해찬의 목소리에 유권은 들고있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굳이 제게 묻지 않아도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오는 유권의 표정을 보며 해찬은 몸살이라고 대답했다.


 " 아침에 진영이 전화왔는데 의진이 데려다 주고 보니까 집에 먹을게 하나도 없다잖아. 죽 어떻게 끓이냐고 물어서 가르쳐주는데 진영이가 얘기하더만, 너네 싸웠다고. "
 " ... . "
 " 너네 정진영한테 그러는 거 아니다. 어? 안그래도 연애 못해서 예민한 애한테 너네 둘 다 뭐하는짓이야! "


 해찬의 말을 가만듣던 유권은 장난을 알아채곤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열이 40도까지 끓었대- 부러 유권의 앞에서 과장을 하던 해찬은 지금 제 말이 먹히지 않았음을 느끼곤 다시금 정정했다. 아무튼 이마가 부글부글 끓었대- 하고.


 " 뭐 때매 싸웠는데. "
 " 뭐라 말하기도 뭐해, 사소한 감정싸움이라. "
 " 답 알고 있네. "
 " 엉? "
 " 사소한 감정 싸움이라며, 만나면 바로 풀리겠네. "


 어쩌면 해찬이 태평하게 말하는 듯 했지만,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였다. 뭐라 거창하게 말할 필요도 없는 둘 사이는 정말이지 사소한 감정 싸움으로 번진 일이니까.


 퇴근하고 가봐. 해찬의 말에 유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제 자리로 가 테이블에 놓인 서류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일을 해야하는 상황과는 다르게 이미 마음엔 의진이 아프다는 말이 번져가고 있었다.


 어쩐지 평소와는 다르게 묵묵히 일만하는 유권이 어색했지만 해찬은 사소한 장난조차 걸지 않았다. 굳이 듣지 않아도 그의 온 몸이 바빠져 있음이 보였기 때문이였다.


 세시가 지나 네시, 어느덧 다섯시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유권은 제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믹싱 작업중이던 곡을 저장해두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너무 오래 앉아 있던 탓인지 다리가 저려와 다시금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입맛이 없어 점심도 해찬이 사온 빵과 우유로 가볍게 먹었는데도 배가 고프진 않았다. 그러고보니 의진과 다투었을때면 늘 입맛이 없었던 것 같다고 유권은 문득 느꼈다.


 나 간다. 차키를 들고 일어서는 유권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해찬은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소리쳤다. 죽 해줄 생각말고 사가라! 하며.


 차에 올라 타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의진에게 전화를 해야하나 고민만 하던 유권은 어느새 의진의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분명 회사를 나설때만해도 죽을 사가야 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음만큼 발도 급했던 탓인지 그저 의진 하나만 보고 달렸던 탓이였다.


 집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 시간 또한 이상하게도 길게 느껴졌다. 시간이지나도 인기척없는 소리에 다시 한번 더 누른 유권은 이번에도 없는 인기척을 느끼며 도어락 버튼을 눌렀다.


 집으로 들어서자 스탠드 불빛 하나만이 공간을 밝히고 있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곤히 잠든 의진을 보며 다가서던 유권은 제 소리에 잠이 깬 의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럼에도 다가갔으면 될 걸, 이상하게 자리에서 멈춰버린 유권은 그대로 벽 앞에 놓인 미니쇼파에 기대 앉아 쿠션을 품에 안았다.


 " 언제부터 아팠어. "
 " 어제 밤. "
 " ... . "
 " ... . "
 " 많이 아파? "
 " 이젠 괜찮아. "
 " 그럼 그 전엔 많이 아팠단거야? "
 " 아마도. "


 스튜디오에 있을때만해도 가지고 있었던 알 수 없는 그 감정이, 의진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엔 완벽히 사라짐을 느낀 유권의 눈엔 모든게 미안하게만 비춰졌다. 짧은 시간동안 많이도 아팠는지 힘없는 얼굴을 보니 괜한 감정으로 벽을 만든 제가 한심하게만 느껴졌다. 분명 얼마 전, 저를 보며 요즘 회사 일이 많아 지친다고 얘길했었던 의진이였기에 더한 마음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다른 말 없이 서로를 보던 두 사람 사이로 조용한 공기만이 떠다녔다. 저만큼이나 힘없는 유권을 얼굴을 바라보던 의진은 밥 먹었어? 라고 물었고, 대답대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얼굴을 보며 웃어보였다. 나도- 라고 대답하는 얼굴을 보며 유권은 벽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 안아도 돼? "


 미안한 눈빛으로 금방이라도 제게 달려 올 것 처럼 묻는 유권을 보며 의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다 미안해- 예상대로 한달음에 의진은 안은 유권은 제 마음 속에서 섞여버린 모든 감정을 밀어낸 채 미안하다고만 얘길하고 있었고, 의진은 그 말을 기다렸단 듯 다른 말 대신 유권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 아직도 열나네. "


 몸을 떼어내며 저를 보는 유권을 보던 의진의 얼굴로 웃음이 번졌다. 짧은 시간 이였지만 너무도 그리웠다. 오롯이 저를 보며, 오롯이 걱정해주는 그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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