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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ec 25. 2015

일 더하기 일은

we

 남자들만 모인 자리는 언제나 그랬듯 정신 없고 정신 없고 정신만 없다. 일곱명의 입담으로 몇번이나 주제가 바뀌고야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며칠 전 소개팅을 했다던 동원의 목소리였다. 예쁘냐? 얼마나 예쁘냐? 얘기를 채 시작하기도 전, 시작된 진상 둘의 목소리에 다섯은 다른 말 대신 날선 눈빛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ㅡ 예뻤어.



 그 말 하나에 나머지 다섯명은 조개구이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남들이 들으면 이 정도로 난리 날 말이 아닌데, 어째서인지 우리 사이엔 예쁘다 라는 이 말이면 너도 나도 쉽게 반응을 보였다. 단순하게도 방금처럼 여럿이서 소리를 지르는 걸로.



 연애를 하는 놈과, 연애를 못하는 놈, 그리고 연애가 멈춘 놈들 사이에서 나는 한 여자와 6년 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한참 설레임을 느낄 단계인 친구는 내 옆에서 쉼없이 문자를 해댔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잔에 든 술을 비웠다. 나도 저럴때가 있었는데. 라는 생각을 하며 아까 전, 가게에 도착해 여자친구에게 보냈던 메세지를 클릭했다. 조개구이 집에 도착했다는 말로 이어진 내용에 여자친구는 알았어. 라는 말로 대답했고, 우리의 연락은 그렇게 잠잠해졌다.



 동원의 입에서 나오는 예쁜 여자의 이야기에 한참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민철은 손에서 핸드폰을 놓질 못했고, 그와 맞은 편에 앉은 준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왠 문자야! 나가서들 통화해! 라고 얘기하던 성준은 잔에 채워진 술을 단번에 비워냈다.



 안 피곤하냐? 쉼없이 연락하면? 내 말에 준우는 피곤하다는 얼굴을 지우지 못한 채 어쩔 수 없지? 라고 대답했다. 오분에 한번씩 기계처럼 이어지는 연락을 보며, 순간 나도 이렇게 해야하는건가? 라는 생각이 번뜩 들어 그 속으로 빠지려던 차, 걱정섞인 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안하면 불안하거든. 혹시나 하는 마음만 커져서.

 ㅡ 혹시나?

 ㅡ 어, 혹시나 얘한테 딴새끼가 껄떡 되는 건 아닌가해서. 어찌보면 그 불안함을 안가지려고 계속 연락에 집착하는 게 아닌가 싶다.

 ㅡ 그렇게 연락하면 안 불안해?

 ㅡ 불안하지. 불안한데, 연락온다는 그 하나로 불안한 마음을 감추는거지. 답장이 오니까. 아, 얘가 남자섞인 술자리에 있어도 정신은 차리고 있구나. 뭐 이런 거?

 ㅡ 피곤하겠다.

 ㅡ 연애가 그렇지.



 사실 태형이 한 사람과 6년을 만나는 동안, 그간 친구들 사이엔 많은 연애 변화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면서 하나 느낀건 제 연애는 편해짐과 동시에 남들과는 다르게 설레임이 생겼다는 것이였다.




 이젠 연락 하나로 머리를 쓰며 끙끙되는 일과, 떨어져 있는 서로에게 주어진 상황으로 오해를 갖고, 오해를 하는 일은 언제부턴가 믿음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한참 준우의 말을 듣던 중, 소리나게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놓던 민철은 아! 연락 안돼. 라고 얘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술 마시고 있나부지. 그의 말에 주변에선 걱정 말라는 식으로 대답을 건넸지만, 어째선지 그 말들이 민철을 더 자극하게 만든 것 같았다. 단번에 핸드폰을 쥔 녀석은 밖으로 나섰고 나는 그런 녀석을 말없이 시선으로 쫓았다.



 오래 된, 오래 한 연애로 인해 주변에서 듣는 말들이 많던 요즘이였다. 애인의 연락 한통에 발을 동동거리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핸드폰을 쥐었다. 나 통화 좀. 내 말에 염장지르지마! 라고 손을 뻗는 준우의 이마를 밀며 가게 밖으로 나와보니 이미 민철의 언성은 높아져 있었다. 그 모습에 난 괜한 눈치가 보여 다섯 발자국 쯤 떨어진 가로등 밑에서 1번을 꾹 눌렀다. 그리고, 두어번의 신호가 지나고 전화 너머로 늘 듣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ㅡ 벌써 집에 가?



 늘 그랬듯이 우린 약속 자리를 떠나며 전화를 했으니까.



 ㅡ 아니, 잠깐 나왔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 전화 너머로 하품 소리가 들려온다.



 ㅡ 우리 통했나? 안그래도 잔다고 문자 보내려는데 딱 전화왔어.



 예전에는 이 시간까지 밖에서 놀면 온갖 잔소리를 다하더니, 이젠 태연하게 졸리다고 얘길하며 여유 가득한 목소리로 말한다. " 더 놀다가라해도 피곤하다고 못 견디고 갈 거면서. "



 ㅡ 벌써 열한시네. 그림은 다 그렸어?



 너도 그렇듯 나도 너를 알고있다. 굳이 네가 말하지 않아도.



 ㅡ 응, 두장. 너무 열심히 그렸나, 눈이 막 감겨.



 언젠가 술에 취한 네가 내게 말했었다. " 난 가끔 네가 수정이처럼 보여. 넌 분명히 내 남자친군데 가끔은 세상에서 제일 친한 친구처럼 그렇게 느껴져. "



 연애로 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참 많이도 물들었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은 우리에게 익숙함을 안겨주었으며 이젠 서로의 앞에선 모든게 당연해졌다. 나만 보는 연애가 아닌 우리를 보는 연애로, 또 어느 날엔 날 서 다투게 될 때면 그 상처 속에서 나를 감싸다가도, 너를 보면 당연하게 너를 감싸게 되는 그런 연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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