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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비아 Apr 06. 2023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 부모 사별자의 내면치유 애도 일기 #1


2021년, 코로나가 한창인 설 연휴의 병원은 삭막하고 음침하게만 느껴졌다. 진료가 없을 시기라 그런가, 본관의 출입문에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몇 군데만이 자신의 자리를 밝히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엄격한 출입 통제로 이유 있는 사람만 허가증과 함께 병원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아빠를 만나기 위해 기다릴 수 있는 장소는 본관 출입문 50m 반경. 3세 딸아이를 달래 가며 멀뚱멀뚱 서 있다 보니 그곳에 대기하는 사람들이 몇 생겼는데, 출입 담당자들은 ‘5인 이상은 집합 금지’라며 그마저도 문밖으로 다 쫓아냈다.


아빠를 데리고 로비로 내려오는 중이라는 언니의 연락에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본관 안으로 향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엘리베이터들을 서둘러 훑어봤다. 수척해진 얼굴의 아빠를 태운 휠체어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통제라인을 사이에 두고, 아빠를 마주했다. 아빠의 얼굴은 우리를 향해 있었지만, 시선은 나를 향한 것인지 내 뒤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를 단번에 알아보지 못하는 아빠의 멍한 표정을 바라보자 아빠를 향한 밝은 나의 얼굴도 서서히 멍해졌다.


“아빠, 나야...”

힌트를 주는 나의 목소리.

“그래, 왔어~”.

아빠의 표정이 한결 풀린다.

“아빠, 아이도 같이 왔어.”


아빠의 시선이 내 옆의 조그만 아이에게로 향했다.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이더니 아빠의 동공이 커졌다가 작아진다. 아이의 형체를 확인했는지 그제야 웃음을 짓는다.

“우리 손녀도 왔네. 할아버지야.”


표현은 서툴지만, 시선은 늘 손녀에게 향했던 아빠. 나와의 통화에서 마지막에는 꼭 아이의 안부를 물어야 전화를 끊었던 아빠. 그런 아빠의 머뭇거리는 시선을 확인하니 심장 박동이 묵직하게 뛰어댔다. 병원에서의 첫 만남은 이산가족 상봉하듯 짧고 굵게 5분 남짓. 며칠 뒤 아빠를 간병하기로 했기에 휠체어를 힘들어하는 아빠를 돌려보내고 아이와 함께 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힉-흡, 힉-흡.

며칠째 지속되던 아빠의 딸꾹질 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았다. 펑퍼짐한 환자복이 아래위로 크게 흔들리더니 호흡이 멈췄다. 아빠는 다급히 갈비뼈 위에 손을 올리고는 괴로운 듯 찡그린 얼굴로 숨을 쉬어보려고 노력했다. 허억-헉, 신음하는 소리가 간신히 내뱉어지자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몇 분 후, 통증이 시작됐다. 예기치 못한 고통에 아빠의 왼손이 경련을 일으키며 천장을 향해 덜덜덜 떨렸다. 머리와 허리가 반대 방향으로 꺾이듯 격렬히 뒤틀렸다. 아빠는 외마디 비명 외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고통이 잦아들자 힘이 풀린 손을 허공에 저어대며 누군가에게 빌었다. 그만, 제발 그만해.




시신경척수염이라 불리는 희귀병. 자가 면역성 질환의 일종으로 팔다리와 뇌를 연결해주는 척수와 시신경에 생긴 염증이 원인이었다. 재발률 80%. 걸을 수 있는 확률은 미지수. 시력장애와 하반신 장애를 평생 갖고 가야 한다고 했다. 당뇨가 있던 아빠가 딸꾹질을 시작으로 희귀병 판정을 받기까지 한 달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신경통으로 힘들어하는 아빠는 수면제에 의지해 쪽잠을 잤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경련을 대비해 침대 프레임을 꼭 잡은 채로. 침대를 의지하는 아빠의 손에 나의 손끝을 살짝 대보았다. 혹여 잘못 만졌다가 통증이 생길까 싶어서였다. 아무 일이 없자 안심하며 아빠의 손등 위에 내 손을 포갰다. 수분이 빠져 푸석해진 손등, 얇아진 가죽 위로 자리를 드러낸 핏줄. 커다랗고 듬직했던 손은 어디 갔는지...


초라해진 손이지만 아빠만의 온기는 여전했다. 그 따뜻함이 사라지지 않도록 나의 온기를 전해주고 싶어 아빠의 손을 오랜 시간 잡고 있었다. 잘될 거야, 나아질 거야. 아빠가 들었으면 좋겠지만 깨우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입 모양만 어물어물 움직였다. 간이 의자에 등을 대고 누워보지만, 쉬이 눈이 감기지 않는다. 어둠 속 희미하게 보이는 천장을 메모지 삼아 떠오르는 질문들을 끄적여본다.


우리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고 싶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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