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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비아 Apr 14. 2023

1997년 4월, 시들어 꺾인 당신이라는 꽃

: 부모 사별자의 내면치유 애도 일기 #4


엄마가 없는 동안 가까이 사는 작은고모가 가끔 들러 밑반찬을 해주곤 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지 일주일이 흘렀을까. 꾸물대며 시간을 보내다 등교를 마쳤어야 할 시간에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구겨진 신발을 펴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그 안에 놀란 듯 서 있는 엄마.


언니와 나를 발견한 엄마는 작은 소리로 ‘어?!..’ 내뱉으며 주춤거렸다. 우리는 빨리 내리지 않는 엄마의 손을 잡아끌었다. 마는 선 층에 낯선 사람에게 지로 끌려 나오듯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어디 갔었어, 이제 온 거지, 연속으로 질문을 던지는 데 엄마는 아까처럼 ‘어?!..’ 작은 소리 외에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학교 안 가고 뭐 하고 있어. 얼른 다녀와."


겨우 입을 뗀 엄마얼른 가라며 언니와 나의 등을 떠밀었다. 우리는 엄마가 잡아준 엘리베이터를 순순히 타고 엄마가 돌아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각해 혼날 일보다 엄마가 왔다는 사실에 신이나 학교로 달려갔다. 기대를 품고 돌아온 집에 엄마는 또, 없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지 2주째 되던 날, 학교에서 수업을 받는 도중 집으로 오라는 아빠의 연락을 받았다. 이번엔 진짜 엄마가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뒤꿈치가 저절로 들렸다.


생명력을 뿜어내며 단단하게 서 있는 목련나무들의 행렬을 지나고, 노란물이 뚝뚝 흐를 것 같은 개나리꽃 흐드러지게 핀 아파트 길을 지난다. 급한듯 천천히, 느리지만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순간마다 따사로운 멜로디가 들리는 듯 했다. 어서 집에가봐, 엄마가 있을거야, 하고.  


가방 끈을 움켜쥐고 폴짝 거리며 도착한 집. 엄마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와 언니의 신발을 보고는 축 처진 발을 질질 끌며 거실로 걸어갔다. 소파의 한 가운데에 무거운 얼굴을 한 아빠와 어리둥절한 언니가 앉아있었다. 아빠의 표정을 보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바짝 섰다. 눈에 보이는 빈자리를 찾아 앉자 아빠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제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것 같아..."


말끝을 흐리던 아빠가 팔꿈치를 무릎에 괴며 힘없이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어깨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하더니 아빠의 안경알에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 왜...? 엄마... 죽었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언니가 되물었다. 아주 느리게 그러나 마지못해 아빠가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내 눈에 눈물이 차올라 앞이 보이질 않았다.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았는데 눈물이 투두둑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아빠는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소리 내어 울음을 쏟았다. 손바닥 사이로 새어나오는 커다란 울음소리가 내 귀에 메아리치듯 울려댔다. 아빠의 슬픔을 시작으로 언니도 나도 엉엉 소리 내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의 손길, 엄마의 품, 따뜻한 엄마의 온기를 저장해두었던 내 심장이 까맣게 변해간다. 깊은 어둠속으로 덜그럭 거리며 떨어진다.


"엄.. 마..... 엄.... 마........"


애타게 소리 내어 부르는 데 가슴이 욱신거렸다. 퉁퉁 부은 눈에도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른다. 우느라 기력이 빠진 입에서는 흐으으, 하는 신음소리만 새어나왔다.



엄마 자살했다. 가족을, 세상을 떠나, 다시 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렸다. 남겨진 가족들은 잃어버린 그녀를 떠올리며 한자리에서 오랜 시간 목 놓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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