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확실한 커피중독

by 민지

지금 이 순간 살아가는데 나에게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를 묻는다면, 주저 없이 커피가 떠오른다.


이제는 의식처럼, 하루의 시작을 커피에 맡기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자고로 나는 아침잠에 완전히 항복해 버리는 사람이라. 지각을 면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늦게 일어나기 위해 5분 단위로 알람을 맞춰놓고 잠에 들곤 한다. 그런 내가 출근 전, 편의점에 들려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10분이나 일찍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 걸 보면, 스스로도 놀랍다.

하지만 맞춰놓은 알람 소리를 놓치는 불상사나, 전날 아무 데나 던져놓은 카드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날이면 ‘오늘 아침은 커피를 마시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조급함에 세상 불행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내가 특히나 애정하는 편의점 커피는 매일유업 my 카페라테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 꽂히면 쉽게 종목을 바꾸지 않는 나의 눈에 들어온 이 친구.

(실제로 10년 주기로 커피 메뉴가 바뀌었다. 사회초년생 때는 커피에몽, 그다음은 서울커피우유, 그리고 지금은 매일유업 my 카페라테)

적당히 진한 우유의 밀도와 달달한 시럽의 조화는 내 까다로운 커피 취향에 정확히 들어맞았다.

공복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커피가 혈류를 타고 몸을 깨우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면 중독도 이런 중독이 없겠다고 생각한다.

문득 중독이란 단어를 되뇌다가, 갑자기 어릴 적 아빠의 담배를 미워했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나는 커피에 중독된 이후로, 아빠의 흡연에 조금 더 관대해졌다.

어릴 때는 담배가 그저 아빠의 건강을 해치는 악의 무언가로만 보였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빠가 금연하기를 기도하고 소원했다. 금연을 간절히 빌고, 아빠의 손에서 담배를 뺏어 울던 적도 있다. 귀여운 아이들의 만류에도 쉽게 금연을 하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딸들의 이런 간청에도 담배의 유혹에 늘 쉽게 흔들리는 아빠에게 일종의 배신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빠에게 금연을 강요하지 않게 되었다.

아빠에게 담배는 단순한 중독의 대상이 아니었단 걸, 지금의 나는 안다. 지난하고 괴로운 인생을 잠시나마 담뱃불에 태워 날려 보낸다는 사실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서. 이제는 차마 그 행위를 그만하라고 단언하지 못한다. 그것이 잠시나마 아빠에게 숨통이 되어준다면 기꺼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에게 담배가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는 커피가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으니.


33살, 성인이지만 이제 제법 어른 흉내를 내는 나에게 커피는 지치고 지겨운 하루하루를 버티는 생명수로 거듭났다.

대학생 때까지 커피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전혀 몰랐던 내가, 하루라도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가시가 돋치는 사람이 될 줄 누가 예상했을까. 달달한 커피 한잔은 나에게 활력이자 에너지 부스터가 된다. 카페인이 몸에 그다지 좋지 않다는 사실도, 설탕이 건강에 해롭다는 경고도, 이 한 잔 앞에서는 모두 무력해진다.

그럼에도 그냥 카페인이 아니라 달달한 바닐라 시럽이 첨가된 커피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지워보고자 ‘아이스 바닐라라테 덜 달게 해 주세요’를 외치는 나를 보면 스스로가 우습다. 이렇게라도 오래 커피와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이 가엾기도, 대견하기도 하다.

얼음이 동동 띄워진 달달한 바닐라라테 한 모금만 입에 들어갈 때의 느낌은, 지금 나에게 어떤 희열보다도 짜릿함을 선사한다. 글쓰기를 안주삼아 마시는 커피는 더욱이나 달콤하다. 그것이 바로 지금, 소박하지만 확실한 나의 사치다.


우리 모두에게는 살아가기 위한 사소한 중독 하나쯤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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