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가장 앞줄에 세워졌다. 키순서였다. 사춘기가 빨리 온 아이들은 변성기 목소리에 힘껏 힘을 주며 선배 행세를 하거나, 화장실에서 처음 보는 털에 대한 존재를 신기해하거나 자랑스러워했다.
송파구 삼전동, 노을이 예뻐서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은 나이, 같은 수준의 '아이들'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지만 그때는 왜 그리 경계심을 갖고 어렵게 학교생활을 했나 모르겠다. 두렵기도 했고,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완고했다.
하루는 동생이 엉엉 울여 3층인 나의 교실로 찾아왔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인 시절에도 소위말하는 '일진'들이 있었다. 조금 더 껄렁거리는 아이들, 조금 더 튀고 싶었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동급생들의 돈을 빼앗고, 이유 없이 괴롭히고 어쩌면 당했던 이들 보다 가해 학생들이 더 불쌍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철저히 자신을 숨긴 채 약한 줄 알았던 동급생 뒤에서 기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의 힘을 믿었다.
동생의 우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그 당시 동네에서 한 살 많은 형이나 누나하고 '양관계'라는 걸 맺어 양누나, 양오빠라는 관계가 있었는데 대게 선배들이 마음에 드는 후배를 선택하면 맺어지곤 했다. 거기에도 등급이 존재했다. 정말 인기가 많고, 일진 남자친구를 둔 누나는 A급, 그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누나는 B급. 나는 겉멋이 들어 얼굴에 bb크림을 바르거나 머리에 왁스를 칠하고 학교를 다닐 때라 나 또한 양누나가 있었는데 B급정도되는 누나와 양관계를 맺고 있었다.
양양 인구해변에서 캠핑중
양누나, 양오빠는 빽이자, 힘의 상징이었다. 동생을 때린 녀석을 알아보니 꽤나 잘생기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으며 A급 선배들과 양관계를 맺고 있었다. 위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 발걸음은 1학년 교실이 있는 2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생을 때린 녀석을 찾아내어 흠씬 두들겨 팼다. 그리고 다시는 내 동생에게 손대지 못할 만큼 중학교 2학년이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표정과 목소리로 소리치고 내려왔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나에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곧 사건이 터졌다. 같은 반 친구 중에 박쥐 같은 친구가 있었는데, 이쪽에 붙었다가, 저쪽에 붙었다가 하는 박쥐 같은 녀석이었다. 물론 지금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사업하며 잘살고 있다. 그 녀석이 내게 다가와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옆에 중학교의 일진이랑 한번 싸워볼레? 너를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우리 팸에서도 너를 도와줄 거야"
과거 잦은 이사로 초등학교 때부터 워낙 싸움을 많이 했던 터라 겁은 나지 않았다. 당시 버디버디라는 메신저를 이용했을 때인데 나와 싸워야 할 친구의 아이디를 검색해서 대충 그 녀석을 파악했다. 피지컬, 얼굴, 주먹의 크기 등등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라 했던가 며칠 뒤 싸우는 날이 정해졌다. 인근 초등학교 뒤 공터였는데 그곳은 우리들의 공식적인 싸움터였다. 어른들의 접근성이 어려웠고, 장애물이 없었고, 소리쳐도 들을 사람 하나 없는 곳이었다.
우리 학교 친구들과 상대학교 친구들 총 열댓 명이 모여 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당시 최신 휴대폰이던 가로본능이라는 휴대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었다. 싸움을 주선했던 박쥐는 심판이었다. 싸움의 룰은 항복이라고 외치거나 코피를 많이 흘리는 쪽이 지는 거였고,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었다.
"시작!"
꾸준히 운동을 했던 터라 힘, 스피드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나랑 싸운 녀석은 얼굴, 몸, 팔다리 성한 데가 없었다. 우리 둘 다 교복은 다 찢어졌고, 상의에는 피가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찢어진 교복 사이로 작지만 울긋불긋 나의 근육들이 드러났다. 친구들이 의식했다. 나의 중학교 첫 싸움은 그렇게 멋진 승리였다.
내가 타학교 일진과 싸워 이겼다는 소문이 돌면서 그 옆학교, 옆옆학교, 다른 지역에서까지 싸우자는 제안이 들어왔고, 박쥐는 신나서 나의 싸움일정을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총 7명, 5개의 학교 일진들과 싸움을 했고 한 번도 진적이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싸움의 재능이 있다고 착각해서 격투기 선수의 꿈을 갖기도 했다.
나의 중학교 생활은 그랬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일진회라고 불리는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여자친구를 만나고 선배들과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온갖 나쁜 짓을 죄의식 없이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