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니 온 사방이 갈대밭이다. 갈대를 보며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변덕스러운 마음을 보고 갈대라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유연한 사고방식을 갈대라고 하는 것일까.
그러고 보니 나는 갈대 같은 여자이고픈 대나무 같은 여자다. 얼핏 보면 여우 중에 여우 같지만 곰 중에 상곰이다. 그렇다 보니 "하늬씨는 참 의외예요."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한다.
평소 살아갈 때는 굉장히 유연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이거 먹어도 좋고, 저거 먹어도 좋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사람이다. 중간에 스케줄이 변경돼도 그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갈대 같은 사람에 가깝다. 그래서 뚜렷한 선호도가 없는 사람으로 보이곤 한다.
점심 메뉴, 행선지, 일적인 문제들은 웬만하면 It's Okay이다. 그런데 관계에 대해서 의외로 칼 같은 구석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평화주의자라 크게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편이다. 대부분이 욕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에 가깝다. 그런데 일대일에서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 중간이 없이 그 누구보다 차가운 사람이 되곤 한다. 주로 제일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면 연인들.
평소에 갈대같이 살아오다가 꼭 관계에 관해서 대나무가 된다.
좋은 점은 더 좋게, 안 좋은 점은 더 안 좋게. 융통성 있게 반응하는 게 그 누구보다 힘들어진다. 돌이켜보니 구남친들과 헤어질 때 질질 끌면서 헤어져본 적이 많이 없다. 아니다 싶으면 정말 칼같이 끊어내는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였다. 왜냐하면 평소에는 정말 질척거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질척거리던 내가 한 번 아니다 싶으면 단칼에 잘 끊어내곤 했다.
대나무 같은 스타일의 문제점은 개선의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차피 너랑 나랑은 안 돼.'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보니 갈등을 기회삼아 더 나아지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관계를 끊어버렸다. 겨울이 지나야 봄이 오고, 비가 와야 땅이 단단히 굳어지는데 조금이라도 융통성 있게 상대와의 관계를 개선시켜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나의 시간들이 쌓여버렸다. 그 결과 사람 보는 안목은 제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내 주관이 뚜렷하고, 내 세계가 명확한 것은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높게 살만한 일이지만 관계에 있어서 내 세계만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결국 부러져 버리고 만다. 흔들거리는 갈대는 올곧은 대나무보다 부러질 확률이 낮다. 소중한 사람을 내 곁에 오래 두고 싶다면 갈대같이 살아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사랑 앞에 줏대를 논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겠지. 사랑한다면 갈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