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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할 수 없는, 기대하지 않는 관계에 대하여

어쩌면, 필연적 새드엔딩.

우리의 모든 관계를 단지 부부, 연인, 친구 등으로 정의할 순 있겠지만

그 관계 안에 있는 복합적인 감정의 도화선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떻게 시작한, 어떠한 관계든 큰 핵심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는 "기대"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을 주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는 모든 관계에 시작을 알리지만 결국 상대에 대한 기대감이 관계를 톱니바퀴 맞물리듯 돌아가게 한다.


어떠한 바람이 만들어 내는 이 "기대"는 충족되길 원하는 기본적인 욕구이다.

결국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던 기대에 못 미쳤을 때 거절감을 느끼고 서운함을 느끼게 된다


관계에서 기대는 이제부터 기대해야겠다! 며 다짐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관계의 친밀함에서 녹아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그동안은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 친밀해지고, 친밀해지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상대도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친밀하게 생각해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생기는 것과 같다.

이러한 마음들을 알아차리든 알아차리지 못하든 관계에서의 문제를 파고 들어가다 보면 다소곳이 앉아있는 이 기대라는 녀석을 만날 수 있다.  

사실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하기 때문에 시각과 정도의 비슷함 정도만 있을 뿐 하나도 같을 수 없다.


그럼 이 기대가 나쁘다는 이야기냐. 아니다.

어쩌면 이 기대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건강하게 주고받는 사랑처럼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 상대와의 관계에서의 거리감을 조율할 수 도 있게 되는 도구로 작용할 수 도 있다.


다만 내가 하는 기대를 명확히 바라볼 필요는 있다.

우리는 단 한 명도 같은 상황에서 성장했다고 볼 수 없고 서로가 비슷할 순 있으나 같을 순 없으므로 다르다고 봐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기대는 공통적 이어 보이나 역시 미세하게 다를 수 있다

결국 각자가 하는 기대는 다르다는 이야기이다 각자가 하는 기대가 다른데 그걸 서로 툭 터놓고 이야기한다고 해도 풍기는 뉘앙스까지 알아차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며 심지어 듣는 본인도 자신만의 필터링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상대에게 어떠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고 그 기대의 배경에 대해 어렴풋이라도 짐작하고 있다면 적어도 나의 기대가 폭력이 되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 감정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애석하게도 감정은 꽤 자주 이성을 지배하므로 스스로가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까맣게 잊은 채 당장 닥친 사랑의 감정이 맞다고 외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어떻게 완벽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상대를 수용하고 나를 직면하고 감당하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태도이다.

 

관계가 깨어짐만이 새드엔딩이 아니다 기대가 깨어지고 다시 기대할 수 없을 때 역시 새드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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