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공간이 사라졌다!

by 이서진

2022. 2.5.(토) 일은

제 아들, 둥이의 평생소원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그리고

집 안에서 저만의 공간이 사라진 날이기도 합니다.


올해로 열 살이 된 아들의 소원은

'나만의 방 갖기!'였습니다.


저희 집은 여느 집처럼 방이 세 칸이고

자식이라고는 둥이 한 명뿐이지만

10년 동안 아들의 방은 없었습니다.


거실 전체가 둥이의 공부방 겸 놀이방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남편과 제가 신혼부터 갖고 있었던

각자만의 공간을 포기하기에 너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혼수 준비를 할 때, 제가 가장 신경 썼던 것은

바로 책상이었습니다.

정리가 덜 된 공간에서 안심을 느끼는 괴팍한 성격 탓에

저는 어려서부터

이것저것, 이 책 저 책을 다 펼쳐놔야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집중이 잘 됐습니다.


그래서 신혼살림을 장만할 때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은 바로, 저만의 넓~은 책상이었습니다.

한쪽에선 책을 읽고 한쪽에선 공부를 하고...

그렇게 큰 책상 두 개와 피아노가 있는 제 방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혼자만의 음악 감상실로 쓰던 남편의 방은

10년 동안 늘어나는 살림이 하나 둘 쌓이다 보니

어느덧 아이의 방으로 쓸 수 없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그냥 흘러 보냈습니다.


엄마랑 붙어 있는 것을 가장 좋아하던 둥이가

언제부터인가 자신만의 방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둥이는 엄마와 함께 쓰는 물건이 아닌

둥이만의 책상, 침대, 책장, 옷장을 꿈꿨고

친구를 초대하여 방에서 놀고 싶다고 했습니다.


반년을 졸라도 방을 만들어주지 않자

어느 날, 둥이는 엄마 아빠에게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엄마, 아빠! 방 만들어주면 공부 열심히 할게요!"


지키지 못할 빈 약속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한 둥이가 기특해서

남편과 저는 바로 아들의 방 만들어주기 프로젝트에 돌입했습니다.

제가 썼던 피아노와 책상을 당근 마켓을 통해 무료 나눔 하고

둥이의 가구들을 새로 샀습니다.


침대와 책상을 보자마자 정말 기뻐하는 아들!

둥이는 거실에 있는 책과 장난감 중 필요한 것만 선별하여 정리하고

방을 쓸고 닦았습니다.

자신만의 방에서 엄마의 물건을 다 치운 후

캠핑 다닐 때 쓰던 '둥이네 집' 푯말을 방문에 붙입니다.

"엄마, 아빠! 이제부터 방에 들어올 때는 노크해주세요."

라고 말하며 방 문을 닫고 혼자만의 시간을 제법 보내기도 합니다.

비록 학습장애가 있지만 나이에 엇비슷하게 자라는 둥이가 대견했습니다.


혼자서 사부작 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저의 아들답게

둥이도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었나 봅니다.


저렇게 좋아하는 둥이를 보니

아이 엄마임에도 십 년간 저만의 방을 갖고 있었던 제가

분수에 넘치는 호사를 오래도록 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둥이가 기뻐하는 모습은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또, '저만의 공간'이 신데렐라의 마법처럼 사라져 버린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습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쳐보지도 않았던 피아노.

있을 때는 옷걸이 대용이었던 피아노가 없어지니 왠지 집이 망한 것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런 저를 보던 남편은

글을 적을 수 있는 작은 책상을 주문해줬습니다.

비록 예전 책상보다 훨씬 작은 책상이었지만 노트북 작업을 할 정도의 공간은 될 것 같았습니다.

남편도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텐데,

큰 집으로 이사 가면 저만의 서재도 만들어주고

좋은 피아노도 사주겠다는 남편이 참 고마웠습니다.


10년간 저를 안심시켜줬던 혼자만의 공간이 사라졌습니다.

자발적으로 저의 안식처를 아들에게 넘겨줬습니다.

자식에게 해 줘야 될 것을 너무 늦게 해 준 것 같아 미안하고,

늦게 생긴만큼 더 기뻐하는 아들이 고맙기도 합니다.


저는 이제 당분간 가족들 속에서 휴식하는 방법을 찾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랬듯이 둥이가 이 방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엄마인 제가 아들인 둥이에게 물려준 이 방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둥이만의 꿈을 키우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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