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 뒷 북......딱! 나다.
걸음마가 늦고 사회생활이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더니... 이제는 다른 사람의 속도로 살기 위해 애쓰는 것도 귀찮아졌다. 집, 회사, 사회 등 여기저기에 뺄 수 없는 내 자리가 생기고 보니 늦는 게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해야 될 일은 아무도 하지 않고 남겨져 있으니까. 내 일은 결국 내가 해야 되는데 굳이 다른 이의 속도에 맞추고 싶지 않다. 내가 내 속도에 맞춰 천천히 한들 누가 뭐라고 하랴?
모든 부분에서 늦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드라마'다. 방영 중인 드라마는 보지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작품은 더욱 그렇다. 리뷰도 보지 않는다. SNS와 언론에서 한바탕 유행이 끝난 후, 모든 것이 끝난 후! 혼자 본다. 혼자 깊게 빠지고 오래 생각하고 여러 번 보며 감동 포인트를 늘려간다.
그렇게 늦게 본 '나의 해방 일지!'. 박해영 작가님의 '나의 아저씨'에 너무 깊게 빠졌던 기억이 났다. 보게 되면 푹 빠질 텐데... 겁이 나서 미루고 미뤘지만 박해영 작가님의 작품은 내가 거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3년에 걸쳐 '나의 아저씨'를 열 번 정도 봤다. '나의 해방 일지'는 한 달 만에 세 번째 보고 있다. 미정과 구 씨의 러브라인에 초점 맞춰 보고, 미정의 부모님 입장에서 보고, 창희와 기정의 입장에서 보는 중이다. 볼 때마다 다른 느낌, 또 한 가지를 배운다! 앞으로 또 몇 번을 더 보게 될까?
https://www.youtube.com/watch?v=N2_wU6elroQ
당분간 아무것도 안 하려고요. 저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영원히 논다는 것 아니잖아요. 그냥 그동안 수고했다. 좀 쉬어라. 그래 주시면 안 돼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공감했을 것 같다. 거창한 자아실현, 보람, 사회공헌을 갖고 일하는 직장인이 10%는 될까? 10프로도 안될 것 같다. 그럭저럭 다니는 사람 열명 중 다섯 명, 죽을 만큼 싫은데 꾸역꾸역 다니는 사람 3명, 나머진 정말 그만두는 사람 2명.
염창희가 듣고 싶었던 저 대사를 해줄 수 있는 가족이 있을까? 남편, 아내 혹은 부모님이나 자식이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저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의 생계와 전혀 상관없는 친구는 가능해도 가족이라면 역시 어려울 것 같다. 맞벌이지만 굳이 '가장'이라는 짐뿐인 직위를 갖고 있는 남편이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면 나 역시 생계에 대한 걱정이 앞설 것 같으니까.
남편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죽어버릴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대부분 나의 불평과 불만의 대상은 회사, 일, 직장 사람들인데 퇴사 후 미움이 대상이 사라지면 내가 버틸 수 없어할 것이라고 했다. 이 남자, 맨날 낮잠만 자는 것 같더니 나를 너무 잘 안다.
듣지 못할 것 같아 더 그리운 그 말!
퇴근하는 나에게, 주말을 앞둔 나에게 스스로 해줘야겠다.
"그동안 수고했어. 좀 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