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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Oct 20. 2022

우울감의 전이

우울증에서 가장 힘든 건

나의 우울감이 아이에게 전이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공기를 타고 우울감이 아들에게 넘어가는 게 보이는데도 멈출 수 없는 내 모습을 보는 것! 

내가 나를 죽일 수는 없지만 정말 그렇게 하고 싶은 순간들!


우울증은 유전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정환경이 비슷하므로 가족에게 전이될 가능성은 높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엄마도 힘들어했다. 결혼 후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과 호텔 청소라는 험한 직장일로 자존감을 짓밟힐 때마다 엄마는 울었다. 나는 엄마가 술을 마시고 밤늦게 들어와 혼자 흐느껴 울다가 외할머니와 함께 우는 모습을 잠결에 몇 번이나 봤었다.

내가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 후 알게 됐지만 엄마도 정신과 상담도 받으셨다. 약을 먹고 술에 취한 아빠에게 밤 새 시달리고, 사람들이 호텔에서 보낸 즐거운 흔적을 치우다 보니 엄마의 병은 깊어졌다. 

다행히 엄마는 막내딸인 내가 공무원이 된 후 1년 후 회사를 그만두셨다. 다행히 회사를 그만둔 후 엄마의 우울증은 거의 없어졌지만 활동량이 줄면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 매일 억지로 운동을 다닌다. 햇볕이 쨍쨍한 여름에도, 칼바람이 몰아치는 겨울, 주말, 공휴일 할 것 없이 참 열심히도 다니신다. 엄마는, 당신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다 저 세상으로 가는 게 막내딸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하셨다.


나 역시 학창 시절부터 유난히 예민했고 생각이 많았다. 

사람들은 천둥 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던 바다. 갇힌 것 같은데 어디를 어떻게 뚫어야 될지 모르겠어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나의 해방일지 제4회 중>

주인공 '염미정'의 대사처럼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은 삶! 그래서 언제든지 끝나도 상관없는 삶! 

딱 내 모습이다. 소심한 여고생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잠자리에 칼을 들고 잔다거나, 끈으로 목이나 손목을 꽉 묶고 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국마다 돌아다니면서 모은 약을 한 번에 먹는 것이었다. 다행히 바로 효과가 나진 않았지만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안심됐다. 나도 모르게 언제든지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약물 부작용 따위를 걱정할 여유조차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남편과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낳은 후 우울감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10년 치 우울감을 한 번에 몰아서 받는 것 같다. 무게도 없는 감정에 눌려서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더 끔찍한 것은, 나의 아들 둥이!

ADHD와 우울증은 분명 다르지만 아들 둥이에게서 나를 힘들게 했던 형체 없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의 짜증이라고 하기엔 분노가 섞인 감정이 느껴지거나 때론 심하게 풀이 죽어 있는 모습.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 

나는 비자발적 생계형 맞벌이 전선에 나선 엄마들의 목적 즉, '우리 아이가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해주고 싶다!'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면 아들은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내가 하는 가장 끔찍한 생각은,

 '모자란 점을 채워가며 버텨서 성인이 된 둥이가 결국 엄마나 나처럼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이렇게 사는 의미가 있을까?'이다. 수십 년을 버티며 사는 의미가 과연 있는 것인지. 둥이를 살게 하는 게 둥이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지. 혼란스럽다.


  "너도 행복을 느낄 때가 오겠지만. 둥이는 분명히 너와 다를 거야. 자꾸 그렇게 생각하지 마."

  "엄마는 몸도 약하지만 마음이 아파서 푹 쉬게 해줘야 해."라는 남편의 말 덕분에 둥이는 매일 엄마를 꼭 안으며 위로해 준다.

  "엄마, 오늘도 힘내요. 사랑해요."라고. 


세상에서 가장 강해야 할 엄마인 나는

스스로도 버거울 나이인 아들에게 매일 에너지를 받으며 하루를 살고 있다. 


내가 활력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둥이에게 우울감이 넘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아니면, 아예 아들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둥이에게 도움이 될까?


여전히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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