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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Jun 03. 2022

제때 못 내리는 여자!

출근길,

엘리베이터에 가장 먼저 올라탔다. 

1층. 나를 포함 일곱 명 정도 탔다.

2층. 우르르르.

3층. 꽉꽉.

계속 탄다. 꾸역꾸역

분명히 정원 초과일 것 같은데...

너무 가까이에서 들려 부담스러운

타인의 숨소리를 견디며

다 같이 슝~ 위로 올라간다.


어마어마한 사람들에 밀려

난 이미 엘리베이터 저... 끝에

박혀버렸다.


26층 회사 건물 중

한 평도 안 되는 나의 작은 책상이 있는 곳은 21층!

12층부터 조마조마해진다. 

이 많은 사람들을 뚫고 내가 내릴 수 있을까?

아무도 개의치 않는데

'잠시 좀 내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혼자 부끄럽다 ㅠㅠ

 17층... 부터는 포기한다.

 '그래. 꼭대기까지 또 올라가자.'

21층에 도착했지만

나는 저 구석에서 21층에 내리는

몇 명 직원을 부러운 듯 바라만 본다!

 '휴... 이 바보. '


아직 에어컨을 틀지 않아 오히려 더 무더운 초여름.

다들 출근 전 샤워를 했을 텐데도 스멀스멀 나는 땀냄새와

남녀 직원 간 다닥다닥 붙을 수밖에 없는 민망함을 버티며 꼭대기 층까지 또 올라간다.


드디어 26층! 마지막에 내리는 직원은 끝까지 내리지 않고 엘리베이터 맨 뒤에 여전히 서 있는 나를 흘끗 보며 내린다. 그래... 1층부터 탔는데 끝내 내리지 않는 아줌마가 이상하기도 하겠지. 나도 내가 이상한데 ㅠㅠ


 17년 전, 지금 일하는 이 건물에서 근무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첫째, 건물이 높아서!

둘째,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출입통제시스템이 설치돼 있어서!

 사원증을 기계에 갖다 대면 열리는 게이트가 멋져 보였다. 매일 아침마다 비밀 구역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드는 출입구가 좋았다. 커다란 비밀의 공간에 내 자리가 있다는 게 참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제때 못 내리는 내 성격 탓에 높은 건물이 부담스러워졌다. 내일부터 행복한 3일 연휴가 시작된다. 일단 쉬고, 다음 주부터 용기를 내 봐야겠다.

  "죄송합니다, 잠시 내리겠습니다."라고 아무것도 아닌 말을 잘해보고 싶다.


아고... 이런 나를 어디다가 쓸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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