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편지가 그리워지는 가을입니다.
보낼 곳이 없어 편지는 못 쓰고 대신 그리움이 가득한 시를 읽어 봅니다.
작가보다 한층 더 감성적일 것 같은 시인들의 사랑.
나이가 들어서인지 애틋한 사랑의 마음보다 한정된 글자수로 사랑을 표현한 글솜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표현할 수 있지만 애써 감춰야 됐던 글쟁이의 사랑.
사모 /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 보리라
울어서 지쳐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먼 후일/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연밥따기 노래/허난설헌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