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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Sep 19. 2023

글쟁이의 사랑

손 편지가 그리워지는 가을입니다.

보낼 곳이 없어 편지는 못 쓰고 대신 그리움이 가득한 시를 읽어 봅니다.

작가보다 한층 더 감성적일 것 같은 시인들의 사랑.


나이가 들어서인지 애틋한 사랑의 마음보다 한정된 글자수로 사랑을 표현한 글솜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표현할 수 있지만 애써 감춰야 됐던 글쟁이의 사랑.


사모 / 조지훈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 보리라

울어서 지쳐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먼 후일/김소월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무라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때에 '잊었노라'


연밥따기 노래/허난설헌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 흘러

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두었지요.


그대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

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이 부끄러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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