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26. 금요일 저녁! 난 남편에게 노란 장미를 선물 받았다.
이별의 의미를 가진 노란 장미꽃을.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약 15년 동안 남편에게 꽃을 선물 받은 건 딱 한 번뿐이었다.
바로 응급실에서 둥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온 남편은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 내게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로 줬다.
무슨 꽃인지도 모를 다양한 꽃들로 구성된 화려한 꽃다발을 받은 나는 금방 행복해졌다.
그리고 남편은 내게 말했다.
"너무 고맙고 사랑해."라고.
낮엔 사랑하는 아기 둥이를 하늘로부터 선물 받았고 저녁엔 사랑하는 남편에게 꽃다발을 받았다.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만큼 충만함을 느꼈다.
둥이가 태어난 후, 아름다운 꽃다발에 에피소드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43살에 결혼한 남편은 내게 꽃 선물을 한 그날, 유부남 친구들의 코치를 받은 것이었다.
결혼생활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친구들은 단톡방에서 남편에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첫날 와이프를 감동시켜야 남은 평생이 편안하다'며 무조건 선물을 주고 고맙다는 말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니까 남편은 핸드백, 목걸이, 반지 보다 매우 저렴한 꽃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내가 남편에게 받은 첫 번째 꽃다발의 의미는 친구의 말을 착하고 저렴하게 따른 것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지난 금요일 저녁 내게 꽃을 선물했다.
결혼한 지 11년 차에 접어든 내게 남편이 준 노란색 장미꽃.
"오빠, 노란색 장미꽃의 꽃말이 뭔지 알아?"
"꽃이 꽃이지 무슨 꽃말이 있겠니. 세상일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니까."
난 재빨리 스마폰에서 '노란색 장미꽃의 꽃말'을 검색했다. '질투, 옅어진 사랑, 사랑에 질리다.'라는 꽃말 때문에 선물로 잘하지 않는다고 했다. 같이 산 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질투'라는 말은 가벼이 넘길 수 있었는데 오히려 '옅어진 사랑'은 읽자마자 마음이 찡해졌다.
"꽃말이... 사랑에 질리다. 옅어진 사랑이라는데?"
"그래서 아무도 안 가져갔구나."
"아무도 안 가져갔다니?"
알고 보니 그 꽃은 남편이 내게 선물로 준 것이 아니었다. 업무협의를 위해 직원들과 함께 옆 동네에서 열리는 장미축제에 참석했다가 기념품으로 받은 꽃이었다. 남편은 꽃에 별 관심도 없었고 여직원이 많아서 다른 직원들이 가져가고 남은 꽃 중 아무거나 가져왔다고 했다.
이런, 내가 남편에게 받은 두 번째로 받은 노란 장미꽃의 의미는 그저 남는 것을 가지고 온 것일 뿐이었다.
웬만한 것에는 집착하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남편의 성격을 이미 많이 알고 있기 때문에 서운하진 않았다. 다만, 모든 일에 의미를 붙여야지 적성이 풀리는 나와 너무나도 다른 남편이 도대체 어떻게 만나서 결혼까지 했는지 궁금할 뿐이다.
만남 자체가 궁금해진 관계라.
어쩜 우리 부부는 이미 노란 장미꽃처럼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부모님 앞에서 무릎 꿇고 울면서 제발 같이 살 수 있도록 결혼을 허락해 달라던 남편과 나는
'옅어진 사랑'이란 꽃말처럼 이미 남녀의 사랑을 초월(?)한 끈끈한 가족이 돼버렸다.
어쩌면 미우나 고우나 목숨 걸고 함께 나아가는 전우일지도.
'마흔이 넘었으니 그럴 때도 됐지.'라고 생각하며 '앞으로 장미꽃에 물을 줘야겠구나' 싶었다.
정기적으로 해야 될 일, 보살펴야 될 생명이 늘었을 뿐이다.
"아, 나이 마흔 넘어서 아직도 젊다고 말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대 땐 아줌마들 보면 저런 나이에 저런 얼굴로도 사랑을 하나 싶었는데."
- <나의 아저씨> 제1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