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초등학생 4학년 아들, 둥이의 공개수업 날이었다.
휴직 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쿠션팩트를 발랐다. 그것 말고도 오랜만에 하는 것들이 많았다. 비싸게 주고 산 다이슨 드라이기의 헤어롤툴을 참 오랜만에 본 것(결국 망해서 고무줄로 댕강 묶었지만), 크록스 말고 다른 신발을 신겠다고 마음먹은 것, 재킷을 고르는 일, 안경 대신에 1회용 렌즈를 낀 것, 에코백이 아닌 핸드백을 들고 외출한 것 등이다. 아, 오랜만에 눈썹정리를 한다고 설치다가 눈썹 중간을 댕강 갉아먹었고, 마스카라와 립밤이 다 떨어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2주 전, 둥이는 학교에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을 내게 보여주면서, 꼭 와야 돼,라고 말했다. 응, 이라고 말했지만 가고 싶지 않았다.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선생님께서 준비해 주신 자리에 아주 잠시 서 있다가 오면 되는 건데, 회사에서 행사를 준비하던 것보다 더 두근거렸다. 내가 워킹맘이었던가, 자책할 정도로 긴장됐다.
다행스럽게도(?) 추석 연휴기간에 둥이가 폐렴에 걸려 입원했는데 원래 천식이 심했던 나 역시 기침이 무척 심해졌다. 공개수업에 갈 수 없다는 공식적인 핑계가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마스크를 끼면 참석할 수 있을 정도로 완쾌됐고 둥이의 간절한 바람으로 공개수업을 참석하기로 했다.
토트백과 숄더백 중 어떤 게 더 어울리는지 자체심사를 하고 옷장에서 옷들을 잔뜩 꺼내 스니커즈에 어울릴만한 스타일을 골랐다. 4학년이지만 코로나 탓에 그동안 학교행사가 전면 중지돼 올해가 두 번째 공개수업 참석이다. 작년 이맘때쯤, 예쁘게 보이고 싶어 구두를 신고 갔는데 2시간 내내 교실뒤에 서 있느라 무릎과 허리가 빠지는 줄 알았던 기억이 났다. '공개수업은 반드시 운동화다!'는 교훈이 떠올랐다.
운동장에 도착하니 이미 온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요리조리 눈알을 빠르게 굴려 몇 번 본 같은 아파트 학부모 언니에게 갔다.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것도 잠시. 그 언니가 소개해주는 다른 엄마들과 인사하느라 에너지가 줄줄 셌다. 나는 모두 처음 보는 엄마들인데 이 언니는 언제 다 알게 된 걸까? 궁금했다. 내 이름 말고 아들의 이름으로 불리는 게 재밌기도 했다.
학부모 입장시간이 됐다. 비 오는 날, 하수구에 흙탕물이 빨려들 듯 엄마들에게 휩쓸려 정신없이 교실로 올라갔다. 둥이는 4반인데, 4반은 어디 있는 건지. 이리저리 자식의 반을 찾는 엄마들로 학교 복도가 시장통처럼 시끄러웠다. 4반이 눈에 보였다. 혹시 볼펜이 필요할까 싶어 소심하게 챙겨 온 볼펜으로 참석부에 서명을 했다. 수업종이 쳤지만 엄마를 찾아 힐끗힐끗 뒤를 보는 아이들 틈에 둥이가 눈에 띄었다. 오메, 예쁜 것. 저렇게 앉아 있었구나. 짝지가 여자라더니, 차분해 보이고 예쁜 아이였구나. 분임별로 앉은 모양, 전자 타이머 시계가 붙어있는 화이트보드 칠판, 선생님까지. 선생님! 아, 저분이셨구나. 둥이의 학습능력이 부족하다며 문제집도, 과제도 별도로 챙겨 주셨던 선생님. 혼자 반가웠다.
교실 뒤에 엄마들이 어느 정도 차이자 수업이 시작됐다. 둥이는 수업 중에도 자주 나를 보며 윙크를 했다. 선생님의 질문에 초등학생이 맞나 싶게 또박또박 답하는 아이들. 역시 여학생들은 생각의 깊이와 대화의 수준이 뛰어났다. 감탄과 함께 저렇게 야무진 아이들과 경쟁을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든다.
내 아들 둥이는, 의욕만 남달랐다. 선생님이 '둥이 발표하세요~'라고 시켜주면 서서 가만히 있거나 너무 작은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굳이 손을 안 들어도 될 텐데, 잠시 아쉬웠지만 구석에만 있는 나보다 용감하게 손을 든 둥이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아, 우리 둥이는 코피가 나서 속상한 마음을 글로 적었구나.'라며 담임 선생님께서는 감사하게도 둥이의 발표가 멋지게 끝날 수 있도록 매번 도와주셨다. 정말 감사했다. 글짓기 시간, 자세가 좋지 않다고 두 번이나 선생님께 지적을 받아도 살짝 나를 보며 씩, 웃는다. 삐뚤빼뚤 제 맘대로 움직이는 내 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마스크를 끼고 왔는데, 아들 둥이는 그래도 엄마인 내가 좋은가보다.
둥이는 요즘 부쩍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는 장애인이야.'라고 말한다. 같은 친구에게 여러 번 말한 적도 있다. '알겠다고, 너네 엄마 장애인인 거 아니까 그만 말해.'라고 핀잔을 주는 친구도 있다. 둥이에게 물었다.
"친구들이 먼저 얘기하지 않았는데, 둥이는 왜 엄마가 장애인이라고 자꾸 말하는 거야?"
"엄마는 장애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해서. 친구들이 헷갈릴까 봐."
공개수업 시간이 끝났다. 40분, 짧았지만 선생님께서 부모님들도 참여할 수 있게 커리큘럼을 짜주신 덕분에 둥이에게 응원과 사랑의 쪽지를 남길 수 있었다.
"쉬는 시간이에요. 나를 보러 와주신 엄마, 아빠에게 인사할까요?"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뒤로 몰려왔다. 수많은 무리 속에서도 자신의 새끼를 알아보는 아빠 펭귄이 된 것처럼 아이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달려가 폭 안겼다. 제법 덩치가 큰 4학년 아이들이지만 아직 아기들이었다. 뽀뽀를 하고 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아기들. 둥이도 내게 달려왔다. '엄마, 나 잘했지?라고 말하며 폭 안기는 둥이. 수박처럼 제법 커다란 엉덩이를 톡톡 치고 말랑말랑 탱탱볼 같은 볼에 뽀뽀를 쪽쪽 해줬다.
어쩌면 나는 현재 둥이에게 가장 중요한 선생님, 친구, 친구 부모님들이 다 있는 공개수업에 나올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둥이가 상처받을까 봐. 너네 엄마 이상해, 왜 그래?라는 질문을 받는 둥이를 볼 자신이 없었다.
내 걱정과 달리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둥이가 너무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둥이는 교실이 속해진 2층 구석구석을 소개해줬다. 엄마, 여기서 물 받아먹어. 저기가 요리 방과 후 교실이야. 여기 엘리베이터 보이지? 저건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들만 탈 수 있어. 끊임없이 조잘대는 둥이가 너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제 친구에게 나를 데리고 가더니 나랑 친한 우빈이, 우빈아 우리 엄마야, 라며 소개해줬다. 우빈이는, 너네 엄마 예뻐. 전혀 아픈 사람 같지 않아,라고 말했다. 둥이는 예쁘지?라고 말하며 또 내게 뽀뽀해 줬다.
쉬는 시간 10분, 둥이는 바빴고 난 행복했다.
수업종이 울렸다. 엄마 집에서 봐,라고 인사하며 들어가는 둥이.
공식적인 일정이 모두 끝났다. 집으로 오니 긴장이 쫙 풀렸다.
드디어 끝났구나, 생각하는데 눈물이 났다.
고생은 수업을 준비하신 선생님께서 하셨는데 감동을 받은 건 나인 것 같아 쑥스러웠다.
휴, 공개수업이 뭐라고.
친정엄마는 늘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자식이라고 하셨다.
맞다, 자식은 제일 무서운 존재다.
나에게도 자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종종 생각해 보곤 해. 쉽게 짜증을 내고 까다로운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의 삶을 오랜 시간, 어쩌면 죽을 때까지 책임져야 하는 일, 내가 좋아할 수 없는 내 모습을 자식에게서 문득문득 발견하게 되는 일을 내가 잘 감당해 낼 수 있었을지 자신할 수 없어. 내가 내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무관하게 무겁고 복잡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을 거야.
-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진짜 보기 싫은 내 모습을, 내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자식인데, 심지어 죽을 때까지 사랑해야 되다니. 무섭다 못해 너무 무겁다.
하지만 제일 사랑스럽고 고맙고 뜨거운 것 또한 자식일 것이다.
무섭고 무거워 힘에 겨운 존재를 가장 사랑해야 되는,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 참 재밌다.
오후, 마트에 다녀오니 둥이가 집에 올 시간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둥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선생님으로부터 공지사항 메시지가 왔다.
'오늘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집으로 오면, 잘했다고 꼭 안아주세요~'라고.
둥이가 횡단보도를 건너오면 선생님 말씀처럼 꼭 안아줘야겠다. 뽀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