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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Jul 14. 2024

의지 부족이 아닌,
뇌신경 이상일 뿐입니다.

아이는 병이 없는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절망하고
두려워한다. 이는 아이의 의지 부족이나 나약함 때문이 아니고 외부의 위협을
처리할 수 있는 뇌 기능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어 아이를 안심시키고,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뇌의 신호 전달에 생긴 문제일
뿐이라는 것을 최대한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고 아이를 다독여줘야 한다. 
- 김현아,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 


 "계장님, 감정을 추스르는 게 좋으실 같아요. 잠시 산책이라도......"

 직원의 말은 폭주하던 날 멈추게 했다. 멈추고 보니 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었다. 아무리 화를 낼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회사에서 화를 내며 울고 있다니. 끄럽고 절망스러웠다. 과자껍데기와 입고 벗은 옷으로 어질러진 방을 막 사귄 남자친구에서 들켰을 때도 이렇게 부끄럽진 않았는데. 직원을 말을 듣는 척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여기서 벗어나야 돼. 물리적 공간을 분리시켜야 해. 복식호흡이 도움이 된다고 했었지.'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쉰다. 하나, 둘, 셋. 그리고 삼초 동안 멈춘다. 날숨은 들숨보다 더 길어야 된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자율신경계에 머문 '호흡'을 의식의 세계로 억지로, 억지로 끌고 온다.


 10분 후, 부끄러운 마음을 감춘 채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없었단 듯한 어색한 조용함. 오히려 무안하게 한다. 일이 손에 잡힐 리 없는 상황. 40년간 쭈글이로 잘 살아왔었는데. 남이 뭐라 말을 하든지 잘 참고 있었는데, 이젠 그 어떤 말도 참아지지가 않는다. 8개월 정도 질병휴직하며 마음을 잘 추스르려고 노력했었는데, 회사에서만큼은 감정을 조절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왜 그랬을까. 맞다, 약! 생각해 보니 그저께 저녁부터 약을 깜빡하고 안 먹고 있었던 것이다. 얼른 파우치 속에 있는 약을 꺼내 먹었다. 이제 낳아지고 안정을 찾을 거라며 나를 위로하던 중 둥이가 떠올랐다.


 둥이의 짜증은 일상이 됐다. 참고 참았던 분노가 터진 것처럼 울며 절규하는 둥이는 또 다른 '나'다. 

나는 둥이에게 '둥아, 둥이가 울면서 말하면 아무도 둥이 마음을 모른다고 했지? 울지 말고 천천히 얘기해 봐.'라는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른인 나도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데. 둥이 역시 감정을 통제할 없는 상황이었을 텐데. 속상하지, 힘들지, 답답하지 등 둥이의 마음을 먼저 물었어야 됐다. 나도 못하는 것을 아들에게 훈육이랍시고 말로만 떠들었다니. 


 남편은 둥이의 짜증냄을, 돌발행동과 참을성 없음을 의지 부족이라고 다소 과하게 훈육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아니다. 나는 둥이와 나의 뇌에 뭔가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노 부끄러움과 곤란함을 무엇보다 당사자인 나와 둥이가 가장 알고 있는데, 설마 우리가 노력하지 않았을까. 둥이와 나는 감정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심호흡을 하고, 평소에 좋은 글도 많이 읽고, 약도 꾸준히 먹었으며 상담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화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게 지극히 자의적인 판단이라고 하겠지만, 자식교육 잘 못 시켰다고 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참을성이 부족한 게 아니라, 병의 증상입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함을 반성하며 교육과 상담을 받고 약을 복용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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