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은, 뜬금없는 일의 연속이다.
뜬금없이 병가를 사용하게 됐고, 병가 중에 발령이 났고, 잘 걷다가 뜬금없이 넘어져 태어나서 처음으로 깁스를 하게 됐으며, 아들 둥이는 뉴스에서만 보던 '소아 원형탈모'증을 겪고 있다.
하나씩 풀어보자면, 하반기 정기인사 명단에 내 이름이 적혀 있다며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다. '병가 중'이라는 것은, 현재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이므로 그 어떤 부서에서도 나를 원하지 않을 텐데 어떻게 발령이 났을까? 알고 보니까 일할만한 젊은 직원들은 본부로 다 올리라는 본부장님의 인사방침에 인사담당자가 내가 병가 중이라는 사실을 미처 몰라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번 난 인사를 돌릴 수는 없는 법. 사업소도 아닌, 바쁜 본부에선 나의 조귀 복귀를 바랐다.
일을 하기 위해선, 우선 잠을 줄여야 됐고 난 복용 중인 약을 줄여보기로 했다. 약을 줄이니 잠은 많이 오지 않았지만 커다란 부작용이 생겼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계단을 걷다 넘어진 것이었다. 발목뼈에 실금이 생겼고 인대가 파열 돼 나는 결국 삼복더위에 난생처음 깁스를 하게 됐다. 조기복귀는 물 건너가고 불편함을 얻게 됐다.
그리고 며칠 후. 이것저것 밑반찬을 갖다 주러 오신 친정엄마와 함께 저녁을 같이 먹게 됐다.
제 앞에 놓인 밥을 먹느라 정신없는 둥이. 대부분의 것에 의욕이 없는 아들과 나는, 먹는 것엔 진심이다. 뭘 해줘도 맛있게 먹는 둥이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쳤다.
"둥아, 머리에 이게 뭐야?"
둥이의 정수리 한가운데에 50원짜리 정도 크기로 땜통이 생긴 것이다. 비어있는 곳엔 머리카락 한 올 없이 하얀 두피가 그대로 보였다. 함께 저녁을 먹고 있던 친정엄마와 나는 걱정의 눈빛을 교환했고, 이상함을 눈치챈 둥이는 거울을 들고 와 뭐냐고 보여달라고 재촉했다. 나는 둥이가 제 정수리를 볼 수 있도록 거울 각도를 조정해 줬다.
"엄마, 이게 뭐야?" 둥이의 질문에 당황한 나는,
"둥아, 그저께 머리 깎았잖아. 그때 머리에 상처가 났나 봐. 금방 낳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고 둘러댔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켜 바로 옆에 있는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 엄마, 혹시 원형탈모증......일까요?
문자를 확인한 엄마는 그런 거 같다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둥이를 데리고 피부과를 찾아갔다. 몇 가지 검사 후 의사는 둥이에게 '소아 원형탈모'라는 진단을 내렸다. 의사의 설명을 요약하자면, 소아 원형탈모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그만큼 직접적인 원인을 밝히기 어렵지만 유전과 스트레스가 가장 큰 요인이라는 것이다. 의사는 연고를 처방해 주면서 둥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엄마인 나는 스트레스로 인한 통증인 해리성 신체장애와 섬유근유통을 앓고 있고, 아들인 둥이는 원형탈모가 생겼는데 어떻게 하면 스트레스를 적게 받을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 쳐도 무슨 일이 있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제 아빠의 마음을 둥이가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스트레스에 유독 약한 엄마인 나를 닮은 건지.
아무튼, 답은 없고 해결해야 되는 문제가 차곡차곡 쌓이는 2024년 여름을 둥이와 나는 멍하게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