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영은 15년 전 이곳을 생각한다. 그때도 지금처럼 흰색과 검은색 사이의 스펙트럼 안에 존재할만한 다양한 빛깔의 돌 수백만 개가 바다 앞에 깔려 있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는 당연히 고운 모래와 함께라고 생각했던 다영에게 몽돌 해수욕장의 모습은 낯설었다. 이곳의 돌은 어쩌자고 풍화작용을 마치지 못한 채 이곳에 머물게 된 것인지. 무수히 긴 시간이 지나면 저 검은 돌도 바람과 파도에 닳아 부서져 모래로 변했을 텐데 어째서 여즉 자갈로 남아 있을까. 다영은 돌이 닳고 닳아 사라질 만큼의 시간을 생각하다 곧 포기했다. 대신 그 시간을 보내고도 여전히 바다 앞에 당당하게 앉아있는 찰진 돌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이곳저곳을 다니느라 이미 귀퉁이가 모두 닳아 없어진 돌이 서로 모여있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돌려주지 않겠다는 듯, 사방을 동그랗게 마모시킨 돌은 그제야 함께였다. 그에 비하면 자신과 은수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함께 지내기 위해선 더 오랜 시간과 고통이 필요한 것일까, 그때의 다영은 생각했다.
다시 찾은 몽돌해수욕장은 그대로다. 여전히 차가운 바닷바람과 햇볕에 그을려 탄 듯한 검은색 돌, 그리고 은수와 다영. 지금과 똑같았던 15년 전, 다영은 은수에게 말했다.
"우리 알고 지낸 지 몇 년 째지? 친구도 하고, 연인도 해 봤으니 이제 우리 헤어질까? "
은수는 대답대신 부드러운 바람이 몰고 온 낮은 파도소리를 바라봤다. 부드럽지만 자갈에겐 거친 파도. 투명의 바닷물은 자갈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고 나서야 다시 바다로 후퇴한다. 아무리 더 큰 파도가 몰려와도 파도가 돌멩이를 이길 순 없다. 돌멩이도 파도를 이길 순 없다. 돌멩이 역시 자신의 몸 일부가 깎이고 있는 것이다. 다영의 말은, 목소리는 가느다란 실처럼 엮어져 은수의 귀로, 목구멍으로 타고 들어온다. 그리고 은수의 심장 앞에서 날카로운 바늘로 변한 후 은수의 심장을 마구 찔렀다. 다영이랑 헤어진다, 헤어질 수 있을까, 생각만 가득한 은수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절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고 은수는 그날을 떠올렸다.
다영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인인 은수와 헤어져야 될 만큼 심각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느 때처럼 거제도가 좋아 놀러 온 다영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한걸음에 달려온 은수의 가슴에 못을 밖을 만큼 큰 일은 아니었다. 어쩌면 은수가 이해해 줄 수도 있는 일.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