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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Nov 17. 2019

 메두사 손님

 이상한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요? 흠, 아 어젯밤에 탈모 메두사 손님이 한 분 왔다 가셨어요. 예, 잘못 들으신 거 아니에요. 탈모 메두사요, 예. 탈모가 생겨서 정수리에 딱 머리카락 두 가닥, 아니 뱀 두 마리만 남으셨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쫓아내려고 했어요. 생각해 보세요. 이발사가 메두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손님께서 너무 슬퍼 보이시는 거예요. 눈물범벅이 되어서는 세상을 다 잃은 표정으로, “제 머리 좀 밀어주세요” 하는 것 아니겠어요? 제 목 좀 잘라주세요, 하는 분위기로. 사연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메두사님은 코를 훌쩍이더니 우리 가게에서 제일 좋은 이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그러고는 코코아 한 잔만요, 하더니 사연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기 시작했죠. 사실 너구리용 염색약 재고를 정리해야 해서 일이 좀 바빴지만, 훌쩍이면서 발발 떠는 모양이 애처로워서 아무 말 없이 코코아를 타서 갖다 줬어요.      


 손님은 원래 자기가 누구보다도 풍성한 머리를 갖고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어요. “누구나 절 보면 단숨에 굳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답니다.” 그리고는 애틋한 눈초리로 제 과거를 한동안 회상하더군요. 그러더니 우울하게 말을 이었어요. “다 옛날 말이지요. 작년부터 제 뱀들이 죽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고작 두 마리밖에 남지 않았답니다. 이젠 전 그 누구도 무섭게 만들 수 없고, 누구도 제 머리를 보고 굳지 않아요.”


 그건 좋은 일 아니냐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잠자코 코코아나 한 잔 더 따라줬어요. 익숙하던 권력을 잃어버리는 건 언제나 슬픈 일이니까요. 그 패배자의 얼굴에다 대고, 니 권력 때문에 고생하던 사람 좀 생각해 보라고 잔소리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는 코코아를 다시 한 번 홀짝거리더니 “그러니까, 잘라주세요. 아무도 얼리지 못하는 메두사로 놀림 받느니, 하찮더라도 사람이 되겠어요.”라며 눈물을 뚝 흘렸습니다.      


 그 하찮은 사람 여기 멀쩡히 서있습니다, 라고 말 하려는 걸 참고 뱀을 죽일 식칼과 장갑을 꺼내왔습니다. 피를 보는 대신 돈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물려야겠다고 벼르면서요. 그 때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어 젖히고 달려왔습니다. 메두사용 머리덮개를 쓴 여자 메두사였어요. 손님은 어머니, 하더니 반쯤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여자는 “이눔아, 어쩌자고 머리를 잘라. 치료약 나왔대! 빨리 가자, 응?” 하고서는 저를 째려보았습니다. “아니 어린 애가 그런 말을 했기로서니, 그렇게 막 자르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어른이면 어른답게 좀 행동하세요!” 라더군요. 참고로 손님은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여자는 가방에서 알약을 하나 꺼내 손님에게 먹이더군요. 머리는 금세 자랐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구석에 박혀 있었어요. 그 여자가 머리덮개도 챙겨 올 정도로 사려 깊어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손님은 거울 속의 제 모습을 확인하고 괴성을 지르더니 가게를 뛰쳐나갔습니다. 여자는 귀엽다는 듯이 “어이구, 어쩜 저렇게 좋을까” 하더니 그 뒤를 천천히 따라 걸어가더군요. 저는 그제서야 구석에서 나와서 바닥에 쏟아진 코코아를 닦을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상한 손님’은 아니네요. 자신이 가진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손님들은 흔하니까요. 그런 분들은 도통 권력으로 인해 다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할 줄을 몰라요. 옛날에 돌아가신 고명하신 분이 그런 말을 한 적 있어요. 사람들은 연약해서 서로를 사랑한다고. 우리 마음을 인간애로 이끌고 가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비참함이라고. 그러면서 중세 시대의 왕이 노예와 연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노예의 삶이 가지는 연약함을 공유하지 않아서라고 했어요. 그들에게 노예는 존재론적으로 다른 부류의 존재들이었던 거죠. 그 메두사 손님이 저에게 그랬듯.      


 메두사 손님이 이번 탈모로 ‘하찮은 인간’의 연약함을 공유해주길 바랐는데, 이미 메두사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겪은 사람이 그러기는 어려웠나 봐요. 사실 당연하죠. 메두사로서 받는 교육은 인간이 받는 교육과 이만큼 다른데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것들을 보고 먹고 입으며 자라는걸요. 우리 사회는 그 손님과 같은 분들을 참 잘 양성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상한 손님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셨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요. 지금으로서는 흔한 손님분들밖에 생각이 나지를 않네요. 그런 분들이 언젠가 ‘이상한 손님’이 되는 날이 오면 들러요. 따뜻한 코코아라도 건배하면서 축하해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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