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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Nov 16. 2019

뻐끔뻐끔

 할머니는 판잣집 앞에 옹송그리고 앉아 담배를 폈다. 가끔 내가 그게 뭐냐고 물으면 할머니는 구름이라고 했다.      

 비 오기 전 먹구름을 냉큼 몇 자 띠어다가 볕에다가 말리는 겨. 그러면 요맹크름 줄어서 빳빳해지는디, 그걸 돌돌 말아논기지.      


할머니가 뻐끔, 뻐끔 할 때마다 나오는 허연 연기가 구름인 것 같기도 해서 나는 오래도록 그 거짓말을 믿었다. 소식이 끊어졌다던 엄마가 불쑥 찾아와 “아이 앞에서 무슨 담배에요!” 하고 기겁을 할 때까지. 할머니는 엄마 앞에서 죄인처럼 담배를 숨겼다.       


그러니까, 그랬었다.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장례식은 조촐했다. 할머니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아는 사람 중에서도 장례식을 올 만큼 친분을 유지한 이는 손에 꼽혔다. 해봤자 나, 엄마, 그리고 요양원 직원들 정도. 할머니는 빈말로도 둥근 사람은 아니었다. 타인을 잘 믿지 못했고, 항상 손해 본다고 생각했으며, 조금이라도 이득을 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반쯤은 천성이었겠으나 반 이상은 어린 손자를 혼자 키워내야 하는 팍팍한 사정 때문이었을 테다.      


 열 살까지 나는 그녀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자주 못난 사람이었다. 나는 100원을 깎겠다고 시장바닥에서 언성을 높이는 그녀가 짜증났고, 그런 모습을 동급생에 들킬까봐 두리번거리는 게 짜증났으며, 언젠가 내가 그녀처럼 구질구질하게 굴고 있을까 무서워지는 것이 짜증났다. 그리고 그녀가 그런 모양이 된 데에 손자라는 짐덩어리가 기여했다는 생각에 이르면 짜증은 무기력이 되어 내 삶에 늘어 붙었다.      


 그래서 고급 파마 머리에 달착지근한 향수 냄새를 풍기는 여자가 ‘엄마’라며 나타났을 때 냉큼 그 쪽에 붙은 건, 반쯤은 영악함이었지만 반쯤은 그 곳을 탈출하고 싶다는 절박함이었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행이라고 한숨처럼 뱉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3평 남짓한 집으로 도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나는 가끔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그녀가 담뱃갑 안에 들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서 할머니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새로운 집, 새로운 가족들에게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나는 담배가 하얗게 말린 구름이 아니라 108여 종의 발암성분이 있는 유해물질임을 배웠다. 새로운 집에서는 새로운 냄새들이 났다. 나는 그것들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그리고 그 뒤로 할머니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여기, 유품입니다.”


검은 상복을 빼입은 직원이 상자를 하나 건넸다. 박스는 가벼웠다. 안에는 낡은 담배 한 갑이 있었다. 요양원 직원이 말을 붙였다. 


“할머님이 마지막까지 미안해하셨어요. 담배 나쁜 줄 모르고 어린 손주 앞에서 많이 피웠다고. 나중에 늙어서 자기처럼 아프면 어쩌냐고 걱정 많이 하셨어요.”     


그녀는 그 10년간, 고작 그 생각을 했을까. 저를 홀랑 버리고 간 손자에게, 그저, 미안하고, 미안해서, 다시 담배를 피웠을까. 입 안을 씹다가 감사합니다,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비가 왔다. 먹구름이 컴컴했다. 

     

담배갑을 열었다. 한 개피가 남아 있었다. 사실은 나도, 할머니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 인생에 자욱했던 먹구름을 그나마 하얗게 태워버릴 수 있는 방법이, 담배뿐이었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 하얀 연기에 할머니의 시큰거리는 무릎과, 퉁퉁 부은 발목과, 허벅지에 엄지손톱만하게 난 종기 따위가 들어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매번 기침이 나와 켈록거렸지만, 그래도 열심히, 뻐끔뻐끔하고 하얀 연기를 뿜었다. 할머니는 향보다 이 연기를 좋아하실 것 같았다. 할머니가 담배연기로 만들어진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으면 했다. 그래서 뻐끔, 뻐끔뻐끔. 할머니, 안녕. 뻐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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