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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Nov 17. 2019

행복한 밥상

 금일은 서해 용왕의 구백 구십하고도 아홉 번째 생신일이다. 이번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생일이 새삼 중요해지셨는지 바다에 사는 모든 것들이 참여하는 생일파티를 여시겠다고 난리다. 바다대통합, 선전 문구도 거창하다. 

 때문에 넙치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넙치 대표를 뽑았다. 각종 상어들과 천적들 사이에서 밥을 먹어야하니 담도 세고 어느 정도 또리방하여 넙치 망신은 안 시킬 놈으로 골라야 한다. 넙치 원로들이 밤샘 회의를 통해 드디어 하나를 골랐으니, 이름하야 이서방 되시겠다. 


 이서방은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남달랐던 자다. 명석한 머리로 이곳 저곳을 탐험하기를 좋아했으니 모두가 두려워하는 이 파티를 몹시도 기꺼워하는 유일한 넙치였다. 드디어 내가 그 용궁에 들어가 보는구나, 온갖 진미를 내 혀로 맛보겠구나. 이서방은 전날부터 마음이 부풀어 밤을 샜다. 


 그리하여 다음날, 이서방은 용궁으로 길을 떠났다. 용궁은 장관이었다. 기와마다 박혀 있는 진주와 아름다운 산호가 세공되어 있는 조각상, 그리고 나전칠기로 뒤덮인 대문. 그러나 더 장관은 그 안에 모여 있는 바다 생물 대표들이었다. 상어 옆에 앉아 있는 쥐노래미와 해마 옆에 앉아 있는 다랑어. 평소라면 그림자만 보고도 내뺄 놈들이 바들바들 떨면서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맛있는 간식거리를 찾았다며 기뻐할 놈들이 침을 흘리면서나마 얌전히 서 있었다. 그리하여 연회장은 넙치가 일생 보지 못한 생물들, 그리고 보았으나 제대로는 보지 못했던 생물들로 가득했다. 


 곧 용왕이 등장했다. 이번에 기어이 토끼간을 먹고 살아났다더니 신수가 훤했다. 용왕은 큼큼, 하고 목소리를 고르더니 입을 열었다. 


 “짐이 이번에 죽다 살아나서 느낀 것이 많도다. 짐이 3대 용왕으로서 살아가면서 무엇을 바다에 남겨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것이 바로 바다대통합이 아닌가 한다. 그리하여 앞으로 일 년의 하루, 내 생일만큼은 나의 백성이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동등하게 의견을 공유하고 그것을 앞으로 내 치세에 반영할 것을 선포하는 바이노라.”  


 이서방은 그 모양새가 못내 흐뭇했다. 바다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용왕이 -다소 무례하게도- 기특했고, 이렇게 서로를 마주하는 일이 익숙해지면 이 연회장 밖의 포지션과 상관없이 동등한 입장에서 정사를 의논할 수 있겠다 싶었다. 더 공평하고 좋은 바다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용왕의 연설이 끝나자 밥상이 나왔다. 뷔페식으로 원하는 것을 받아 자리에 가서 먹는 형식이었다. 이서방은 기쁘게 새우알을 듬뿍 퍼 담아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고 보니 제 오른편에 보리새우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보리새우는 잔멸치를 먹다가 이서방의 접시를 보고 화들짝 놀라 발을 부들부들 떨었다. 발에 잡혀 있던 잔멸치가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이서방은 보리새우가 측은했지만 그렇다고 멸치 따위를 먹을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여러 종이 모인 곳에서 모두의 편의를 봐주면서 식사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새우의 입장에서는 두렵고 불편할 수 있겠으나 세상에는 대의를 위해 감수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똑똑한 대표라면 그것을 이해하고 응당 감정을 숨기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지 않으니 주변 사람에게마저 불편한 밥상이 되지 않는가. 이서방은 쯧쯧 혀를 찼다. 


 그래도 제가 숟가락을 입에 넣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모양이 신경 쓰여 이서방은 금세 접시를 비우고 일어났다. 저랑 비슷한 크기의 고기 옆에서 먹는 게 마음 편하겠다 싶었다. 이서방은 접시를 다시금 채우고 가자미 옆에 앉았다. 가자미는 딱총새우 회를 먹고 있었다. 이서방은 신나서 말을 걸었다. 


 “여기 새우 물이 좋네요. 이렇게 진수성찬을 얻어먹고 가니 즐겁습니다.”


 가자미도 동종을 만나 즐거웠는지 대꾸했다. 


 “그럼요. 새우 알을 좋아하시나봐요. 요새 또 새우 알이 제철이죠.”


 제 안목을 알아봐주는 동지에 이서방은 기분이 좋아졌다. 새우 알에 대한 제 전문지식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등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좀 앉겠습니다.”


 가자미는 뒤를 돌아봤다. 상어가 한 마리 서 있었다. 상어는 가자미 옆 자리에 털썩 앉았다. 상어의 접시에는 가자미 한 마리가 회 떠진 채로 누워 있었다. 잘려진 꼬리와 머리가 앞뒤로 붙어있고, 그 중간에는 거죽이 벗겨져 생살이 허옇게 드러나 있었다. 꼬리가 드문드문 파닥였다. 가자미는 아직 살아 있었다. 


 이서방은 치미는 구역질을 삼키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아니다, 이건 대의를 위한 거다, 나는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대표다. 순간 가자미의 눈이 보였다. 한 쪽으로 쏠린 두 개의 눈 중 하나가 허옇게 멀어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동그란 원 대신 반달모양 꼴을 그렸다. 이서방의 눈 앞에 어릴 적 옆집에 살았던 가족이 스쳐지나갔다. 그 집의 외동딸은 장애가 있었지만 일반인보다도 활발하고 순한 아이였다. 삼돌아, 라고 부르면 어그러진 눈으로도 응, 하고 웃어보이던. 


 이서방은 눈 앞이 흐릿했다. 제 뱃속의 새우알이 부화하는 기분이었다. 새끼 새우들이 위장 벽을 타고 올라 목구멍을 뒤덮었다. 이서방은 먹은 것을 토하고 싶었다. 


 그 때 용왕이 입을 열었다. 


 “나의 온 백성이 이렇게 조화로이 밥을 먹으니, 이 어찌 행복한 밥상이 아닐 수 있겠는가.”


 용왕은 껄껄 웃었다. 그러게요, 과연 혜안이십니다, 하는 말이 어디선가 들렸다. 옆 자리의 상어가 박수를 쳤다. 이서방도 눈치를 보다 박수에 동참했다. 박수는 그렇게 몸뚱아리가 큰 물고기로부터 작은 이들에게까지 순차적으로 퍼졌다. 이서방은 왜 큰 이들이 그리 재빨랐는지, 작은 이들이 그리 느렸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빌어먹게도 행복한 밥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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