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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Nov 16. 2019

노란 딱지

 “신입이다.”


 30대 중반쯤 된 파리한 여자가 감방으로 들어선다. 가슴에는 노란 명찰이 붙어 있다. 노란 명찰은 강력범죄다. 살인, 강도, 강간 중 하나. 뽀글거리는 머리를 한 아줌마 하나가 턱짓을 한다. 


 “닌 뭘로 들어왔냐?”


 신입은 잠시 그녀를 쳐다보더니 얌전하게 대답한다. 


 “어머니를 죽였어요.”


 주변이 왁자지껄해진다. 질문을 한 여자는 신입의 손목을 한참 뚫어져라 본다. 가냘픈 뼈대에 손목뼈만 툭하니 튀어나왔다. 손톱은 엉망이다. 여자는 다시 뱉듯 묻는다. 


 “왜?”


 신입은 눈을 감는다. 얇은 손가락이 과거를 더듬듯 제 손목 뼈를 훑는다. 기억이 예전으로 돌아간다.


      

 강정화. 죄수번호를 받기 전 제 이름이었다. 그녀는 예순이 되어가는 어머니의 딸이었고, 열 살 된 딸의 어머니였다. 남자는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뜬 날 도망갔다. 아버지는 정화가 중학생이던 때 노래방 여자와 새집 살림을 차려 나갔다. 집에는 세 명의 여자만 남았다. 


 하지만 그런 건 진짜 불행이 아니었다. 그들은 남자 없이도 삶을 열심히 꾸려 나갔다. 각자는 각자의 딸로서, 매일 아침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어머니는 캐시어로, 정화는 보험판매원으로 열심히 일했다. 작게나마 적금도 들었다. 


 진짜 불행은 딸 진아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가을에 일어났다. 교통사고였다. 어머니는 전신마비가 왔다. 목 뒤 척추를 다쳤다고 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손가락 두 개, 눈, 그리고 입술 뿐이었다. 정화는 일을 늘렸다.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 수술 비용을 대기 위해서였다. 하루 열 다섯시간을 일하고도 생활비는 쪼들렸다. 딸의 손에 무료급식 신청서를 들려보내고 출근하던 날, 정화는 하루 종일 숨을 헉헉거렸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러고도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기는 어려웠다. 정화는 어머니를 집에 두었다. 어머니는 말 그대로 그렇게 “두어졌다”. 철이 지난 겨울 이불을 장롱 깊숙이에 ‘두듯’ 어머니는 단칸방 침대 위에 하루종일 살덩이처럼 누워 있었다. 그녀의 유일한 낙은 티비였다. 움직이는 집게손가락과 중지손가락으로 어머니는 하루에 수백 번씩 채널을 돌렸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당신의 마음대로 돌아가는 세계였다. 


 리모컨을 항상 어머니의 손에 쥐어주는 건 딸 정아의 일이었다. 정아는 학교를 갔다 오면 내내 할머니 옆에 붙어 있었다. 할머니의 기저귀를 갈았고, 죽을 먹였고, 물수건으로 불어나는 살 주름들을 닦았다. 어머니는 점점 짜증이 많아졌지만 정아는 착한 딸이었다. 정화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정화는 정아의 팔에 늘어나는 손톱자국을 알지 못했다. 


 정아가 10살이 되던 해, 정화는 고객에게 사망 보험 혜택을 설명하다 기절했다. 2년 전 “전신마비입니다”라고 말했던 똑같은 의사가 똑같은 어조로 “협심증 말기입니다”라고 말했다. 정화는 자꾸만 오그라들던 심장을 기억했다. 그리고 방에 가만히 누워 있는 제 어머니와, 그 수발을 드는 제 딸과, 제 딸과, 제 딸을, 떠올렸다. 심장이 다시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정화는 입원하라는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집으로 향했다. 괜찮아, 괜찮아, 일단은 괜찮아. 정화는 문 앞에 서서 마음을 다잡았다. 선뜻 문고리에 손이 가지를 않았다. 그 때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목이 졸린 고양이 소리 같았다. 


 “이 년이, 이 년이 날 업신여겨?”


 정화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방을 뒤졌다. 열쇠가 보이지를 않았다. 안에서 아니에요, 할머니, 하고 우는 아이 소리가 났다. 아니 아이 소리가 아니라 제 딸 소리였다. 정아 소리였다. 


 “갖다 대. 안 갖다 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신음 소리. 정화는 열쇠를 찾아 문을 벌컥 열었다. 정아는 제 맨 팔을 어머니의 손가락 앞에 들이밀고 있었다. 어머니는 제 집게로 정아의 팔을 긁어내리고 있었다. 벌건 핏물이 딸아이 팔에 비쳤다. 정아는 제 발로 도살장에 걸어들어가는 소처럼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흐윽, 하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 


 그 광경이 정화의 눈을 지지듯 쏘았다. 바닥에는 리모콘이 박살나 있었다. 리모콘의 빨갛고 검은 버튼이 바닥에 와르르 쏟아져 있었다. 정화는 없는 정신으로 정아를 감싸 안았다. 정아야, 정아야, 괜찮아? 정아야. 팔에는 피멍이 가득했다. 정화는 고개를 돌려 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새빨갛게 충혈된 눈에 입가에 침이 흥건했다. 집게손가락만 허공에서 까닥거렸다. 어머니는 쇳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저 년이 리모콘을 망가뜨려서-!”


 협심증 말기입니다, 하던 의사의 말이 자꾸만 귓전에 울렸다. 정화는 홀린 듯 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에 내리 눌렀다. 엄마, 나도 곧 갈게. 우리, 우리 정아 괴롭히지 말고 같이 가자. 베개 밑에서 느껴지던 몸부림이 꺼져갔다. 정화는 그러고도 한참을 베개를 떼지 않았다. 눈물이 뚝뚝 베갯잇을 적셨다.    

  

 “왜 죽였냐니까?”


 여자는 재차 물었다. 정화는 희미하게 웃었다. 


 “저도 엄마라서요.”


 정화는 다시 제 손목을 매만진다. 정아의 손목에 그어져있던 손톱자국이 선연했다. 심장이 다시 한 번 오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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