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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Oct 19. 2018

비나이다 비나이다

 “쌤, ‘믿다’는 동사에요 형용사에요?”


 과외 시간이었다. 갓 교복을 입은 남자애는 말간 얼굴로 물었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아 얼버무렸다.

 

 “상태는 형용사고 행동은 동사야. 보통 자기 의지로 하는 건 동사고, 아닌 건 형용사.”


 아이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으..래서 ‘믿다’는 동사에요 형용사에요?”


 모래알처럼 쌓아둔 알량한 선생의 권위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시계를 확인하고 황급히 일어났다.

 

 “그건 숙제! 알아내서 톡 보내~”     


 아이를 등지고 나온 길은 추웠다. 뒷통수에 달고 나온 질문이 자꾸만 맴을 돌았다. 믿다는 동사에요 형용사에요? 그러게. 믿는 건 상태일까 행동일까. 우리는 뭔가를 믿게 되는 걸까, 믿기로 결정하는 걸까.



 내가 아는 사람 중 무언가를 가장 열렬히 믿은 사람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매일 산에 올라 불상에 절을 했다. 피가 안 통해 창백해진 발바닥과 앙상한 무릎이 바닥에 쿵, 쿵. 부딪히고 또 부딪혔다. 바닥에 처박은 얼굴이, 한껏 숙인 고개가 늙고 또 가냘펐다.

 

 할머니는 그 열렬한 기원 덕에 손주가 행복하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놈의 고귀하신 부처님이 제 정성을 봐서라도 손주를 굽어 살피리라 믿었다. 사위가 5년간의 외도 끝에 결국 새 살림을 차렸을 때도, 제 딸이 우울증으로 손목을 그었을 때도, 할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 기도를 나갔다. 그리고 돌아와 혼자 남은 내 손을 붙들고 읊조렸다. 부처님이 굽어 살피실거다. 다 잘 될거야. 참 꿋꿋한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꿋꿋했지만 그 버거운 삶을 살아낼 정도로 꿋꿋하진 않았다. 반지하로 이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할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작은 사기그릇에 담겨 돌아왔다. 비가 오던 밤, 나는 그릇을 부여잡고 절에 갔다. 할머니의 그토록 절박했던 기원과 셀 수 없는 무릎 찧음을 받고도 한 톨의 기원도 들어주지 않은 부처라는 작자의 면상을 보고 싶었다.

 

 우산도 없이 어두운 산길을 달려 절에 도착했다. 타닥 타닥 하는 빗소리 사이로 향 냄새가 흘렀다. 나는 폭삭 젖은 몸으로 제단 앞에 꿇어앉았다. 부처는 컸다. 하지만 무릎을 꿇고 앉으니 보이는 건 부처의 얼굴이 아니라 제단이었다. 제단 위에는 과일과 떡과 꽃과 초가 놓여 있었다. 모두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서 저것들을 두고 갔겠지. 두 손으로 소중히 받쳐 내놓으면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고 빌었겠지.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할머니는 어떤 표정이었더라.  


 들끓던 숨이 가라앉았다. 나는 아프도록 끌어안았던 사기그릇을 품에서 내어놓았다. 절을 할 때 할머니는 괴롭기보단 후련해보였다. 어쩌면 그녀는 빌기라도 하지 않고서는 견디기가 어려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뭐든 믿기로 선택했던 걸지도. 할머니에게나 그들에게나 중요한 건 불상이 아니라 제단이었을 테다.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거겠지. 할머니는 부처에게 속은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삶을 버티어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기그릇을 제단 위에 올려놓았다. 부처님에게 드리는 공물이 아니라 할머니의 선택에 대한 존중이었다. 사방에서 타오르는 촛불 빛이 사기그릇에 닿아 일렁였다. 행복하세요, 할머니. 나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빌었다. 그리고 그 기원 때문에 할머니가 행복하리라 믿기로 했다.

 


 “까톡!”

 

 전화가 울렸다. 과외학생의 톡이었다.


 ‘쌤! 동사래요!’

 

 비나이다, 비나이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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