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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마 Oct 22. 2018

유통기한

 12월 31일, 보신각 옆 편의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알바생 시애는 그 날 저녁 6시부터 한 번도 앉지를 못했다. 이 추운 날 참 많은 사람들이, 참 쓸 데도 없이 이 좁아터진 거리로 몰려나오는구나, 시애는 생각했다. 고작 그 종 소리 하나 듣겠다고. 


 처음으로 손님이 끊긴 건, 건물 밖에서 카운트다운이 10 하고 시작됐을 때였다. 누군가 10, 하고 외치자마자 마지막 손님이 황급히 나갔다. 편의점 따위에서 그 귀중한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으리라.      


9. 시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리가 아팠다. 

8. 생각해보니 미성년으로 보내는 마지막 10초, 아니 8초였다. 

7. 이제 뭘 해야 할까. 시애는 멍하니 제 손톱을 내려다봤다. 물어뜯어 엉망이었다. 

6. 대학을 갈 돈은 없었다. 성적도 안 됐다. 

5. 취직을 해야 하나. 취직은 어디서 하는 거지.

4.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는 걸까.

3. 왜 나만 모르지.

2. 아.

1. 나는 왜.      


 기어코 2018년 1월 1일이 왔다. 시애는 거리 전체를 울리는 폭죽 소리를 들으며 바스켓을 들고 삼각김밥 코너로 향했다. 즐거운 비명과 웃음이 가게 밖에 즐비했다. 시애는 삼각김밥 중 유통기한이 12월 31일까지였던 것들을 솎아 바스켓에 던져 넣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것들은 팔 수 없다.


 문밖에선 사람들이 신년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그들은 계획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2017년이 끝나버려도 그 뒤에 걸어갈 수 있는 도로가 뻗어있는 사람들. 시애는 바스켓에서 삼각김밥을 하나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 허기가 졌다. 며칠째 유통기한이 끝난 것들로 끼니를 해결 중이었다. 유통기한이 끝나도 상하지는 않았으니까, 괜찮았다. 


 반쯤 먹었을 때 따릉, 종이 울리고 남자애 대여섯이 시끄럽게 들어왔다. 시애는 급히 먹다 남은 삼각김밥을 계산대 한 켠으로 치우고 어서오세요, 라고 인사했다. 그들은 시끄러이 재잘대더니 맥주와 소주 두어 병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자랑스레 주민등록증을 올려놨다. 99년생, 저와 동갑이다. 모양을 보아하니 첫 음주도 아닐 듯 한데, 설레 보였다. 스스로가 어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특유의 어림이 흥건했다. 시애는 그들을 힐끗 보고는 8900원입니다, 하고 건조하게 답했다. 


 어, 야, 너 걔 아니냐. 무리 중 하나가 말을 걸었다. 부정교합에 안경, 큰 키. 아아, 중학교 같이 다녔던 애다. 시애는 어, 안녕, 하고 대답한다. 


 너 쟤 알아? 다른 남자애가 묻는다. 응, 우리 반. 엄청 조용했는데. 하고 중얼거리던 애는 불쑥 핸드폰을 시애에게 내민다. 번호 좀 줄래? 주변 남자애들이 오오- 거리며 시끄러워진다. 아니, 그냥 동창회도 만들 겸 그런 거지, 같은 반이었으니까, 하며 손사래를 치는 남자애의 볼이 조금 붉은 것도 같다. 시애는 핸드폰을 빤히 바라보다 받는다.


 남자애는 아, 근데 난 신촌 쪽에 학교 다니게 됐는데 넌 어디로 가냐. 가까우면 얼굴 좀 보자. 질문은 어색하게도 붕 뜬다. 시애는 아무 말 없이 핸드폰에 번호를 꾹꾹 눌러 넣는다. 다른 남자애가 핸드폰 주인 머리를 후려친다. 새끼 무슨 질문을 그딴 식으로 하냐. 야, 나도 재수고 저놈도 재수야. 그냥 1년 늦게 가는 건데 뭐, 부끄러워할 것도 없지. 


 시애는 번호 11개를 누르고 남자애한테 돌려준다. 자, 하니 고마워, 하고 받는다. 조금은 주눅이 든 모양새다. 시애는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음 손님에게 눈짓한다. 무리는 어, 어, 하면서 문 밖으로 밀려나간다. 작업에 서툰 제 친구를 질타하는 사내애들의 소리가 안까지 들린다. 시애는 다음 손님의 맥주를 계산한다. 술을 찾는 손님이 유독 많다.  


 시애는 남은 삼각김밥을 우물거린다. 저 남자애는 언제쯤 저게 틀린 번호라는 사실을 알게 될까. 어차피 저들과는 다시 볼 일이 없을 터다. 그건 같은 산을 오르고 있는 자들의 높이 차이라기보다는 계단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에서 다른 층을 걷고 있는 자들의 차이에 가깝다. 그냥 종의 차이다. 


 몸이 추웠다. 컵라면을 하나 까 먹고 싶었지만, 유통기간이 지난 컵라면은 잘 없었다. 아마 컵라면은 유통기한이 길어 제 평생, 쓸모 있는 무엇일 터였다. 그 애처럼. 그에 비해 삼각김밥의 삶이란 얼마나 비참한가. 12월 31일을 지나버리면 쓸모가 소멸해버리는 몸뚱이라니. 


 시애는 문득 제 몸 어딘가에 까만 글씨로 유통기한 2017-12-31 00:00 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미성년이 끝나자마자 제도 밖으로 밀려나버린 이유는, 사실 내가 처음부터 삼각김밥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 어떤 길도, 준비도 없이 벌써 어른이 되어버린 제 몸이 부끄러웠다. 저에게는 어떤 쓸모가 남아 있을까. 


 시애는 막혀오는 목으로 남은 삼각김밥을 모조리 입 안에 쓸어 넣었다. 유통기한이 지나도 상한 건 아니니까, 괜찮아. 괜찮을 거야.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편의점 밖의 폭죽이 무엇을 축하하는지 요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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