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9월에 만났다.
10월에 우리는 연인이 됐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다.
너와 두 번의 봄을 함께했다. 너는 봄을 참 좋아했다. 겨울이 끝나는 걸 좋아했고, 계절이 바뀔 때 나는 봄 냄새를 좋아했다. 봄이면 우리는 교정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봤다. 눈을 감은 채 함께 바람 소리를 듣다가 눈앞에 와 있는 네 얼굴에 자지러지게 웃으며 네 콧잔등에 뽀뽀했다. 하늘이 그리 예쁠 수가 없었다. 너와 함께 누워 있으면, 손가락 끝부터 점차 하늘 빛깔로 물드는 것 같았다.
나는 가끔 너에게 홀렸다. 네 눈이 웃음으로 가늘어져 잔뜩 휘어질 때, 그 해사함이 너무 예뻐 멍해졌다. 그럴 땐 너와 함께 있는데도 갈증이 솟았다. 뭔가 네가 부족해서, 널 있는 힘껏 끌어안고도 어쩔 줄을 몰랐다.
너도 가끔 내게 홀렸다. 그게 네 표정에서 보였다. 헤에-하고 풀리는 네 눈이, 참 좋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가보다, 싶게 넌 웃었다.
우리는 매일 만났고, 난 매일 밤 다음 날을 기대하며 가슴이 부풀어 잠이 들었다. 우리는 환한 낮 여우비 속에 손을 잡고 거리를 내달리고, 산봉우리 바위 위에서 끌어안고 낮잠을 잤다. 이틀에 한두 끼씩 먹던 나는 널 만나고 음식이 맛있는 줄을 알았다. 네 사랑한다는 말에 가슴이 벅차올라 끅끅 울었고, 인생이 행복하다고 내내 노래를 불렀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600일이었다. 어떻게 이럴까 싶게 사랑받고 사랑했다. 내 600일은 통째로 너였다. 돌아보니, 그렇다. 가슴이 벅차도록 너였다.
믿을 수 없게 찬란한 나날이어서, 나는 자꾸만 벚꽃을 생각한다. 하얗게 눈꽃으로 떨어져 내리는 벚꽃이, 자꾸만 눈을 가린다. 아름다운 것은 모두 찰나라 했다. 찬란한 것이 영원할 수 있을까. 찬란한 것들이, 끝나지 않을 수 있을까.
너와 내가 벚꽃이 아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