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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이 수 지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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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이 Aug 03. 2020

나의 삶에 대한 단상

남이 아닌 나에게 맞춰진 초점

어제 유튜브에서 일간이슬아 발행자인 '이슬아' 작가님의 세바시 강연을 보았다. 작가님은 이렇게 말했다. 글쓰기는 부지런한 사랑이라고. 글의 주어가 '나'가 아닌 '남'으로 확장되었을 때 이야기가 풍부해진다고. 생각해 보니 나의 글의 주인공은 항상 나였다. 어디서든 돋보이는 사람이 아니기에 글에서 만큼은 내가 주인공이고, 내 감정에 충실하고 싶었다. 그러다 주변사람에게 관심 없는 성격으로 머물렀고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도대체 내 친구와 가족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글쓰기를 포기했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작가가,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니 얼마나 모순적이고 바보 같은 삶을 살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그랬다. 나는 나만 알았다.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소재는 금방 떨어지기 일쑤였고 하던 얘기만을 반복해서 할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만 집중하다 보니 남이 하는 얘기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무슨 옷을 입고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 금세 잊어버렸다. 그게 내가 가진 문제였다. 늘 우울하게 살아왔던 이유가, 우울한 나에게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쉬는 날마다 친구들을 만났다. 혼자 있으면 우울해서기 보다, 이제는 약속을 잡고 일부러 만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기에 열심히 만났다. 생각보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렵거나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이 풍부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의 나는 왜 남들이 나에 대해 아는 것을 꺼려했을까. 왜 남들의 나에 대한 생각에 집착했을까.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내 주변인들도 소중하거늘. 나는 이걸 꽤 늦게 깨달았다. 남들이 나에게 관심을 주면 나도 돌려줄 줄 알아야 하는데, 받기만 했던 것이다.


다 읽지 못한 책에 꽂힌 책갈피처럼 좋은 순간에 머무를 수도, 슬픈 순간에 있을 수도 있는 게 삶이었는데 나는 살아오면서 내 책의 모든 페이지에 슬픔의 책갈피만 꽂아 놓았는지도 모른다. 언제든 다음 장을 넘어가면 바뀔 수 있음에도 내가 나를 하나의 감정에 가둬놓았다. 


앞으로 내가 쓰는 나의 글에는 내가 관심 있는 누군가가 꼭 있기를 바란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막연한 꿈을 위한 글쓰기는 나를 울리지 못한다. 나의 글이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면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매일 쓰다 보면 달라질 날이 있겠지 희망을 가지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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