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드라마에 나오는 병원이라는 곳은 참 멋지고, 웅장했다. 직장생활을 해본다면 꼭 저런 곳에서 해봐야지 생각하곤 했다. 멋진 주인공이 나오고 사명감이 넘치는 의료진을 보면서 그들의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와 같지 않다. 늘 사건사고가 터지고 이벤트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병원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드물지도, 흔하지도 않은 평범하면서도 일렁이는 무언가가 있는 곳이었다. 그 점이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일정한 리듬을 유지해야 하면서 긴장감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 내가 가질 직업의 주 업무였다.
대학병원은 초등학교 이후로 실습 때 처음 가봤다. 첫 실습이라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했다. 피곤하지만 긴장한 채로 시작되었던 실습은 '절대로 병원에서 일하면 안 되겠다'는 교훈을 주었다. 정신없이 병동을 뛰어다니며 일하는 간호사 선생님들과 살갑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환자들과 마주치는 것이 익숙지 않아서였을까. 답답하고 우울한 병원을 꼭 탈출해야지 마음먹었다.
행복하게 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든 돈과 연결된다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취미로 하던 블로그도 광고가 붙기 시작하니, '취미'가 아닌 '돈'으로 보이기 시작했었다. 나의 글이 아닌 돈의 글을 쓰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흥미도 떨어져 버렸다. 시간이 지나고 돈벌이가 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는 다시 나의 삶을 기록할 수 있는 일기장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직업이라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가지는 업이다. 행복해지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팔아서 돈을 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행복과 돈, 즉 직업은 직결될 수 없는 공식인 것이다. 입사한 지 10일 동안 나는 과연 오늘, 행복한가?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가졌다. 월급날이 오면 그동안 사고 싶었던 물건들을 살 수 있을 거야 위로도 해봤다. 그리고 오늘, 잠 못 드는 밤을 만났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회초년생이라, 일이 서툴러서, 작업 환경이 낯설어서 힘든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처음 시작했던 스무 살의 그때도 두 달간은 매일 가기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모든 처음은 늘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토록 이 직업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도 행복해지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행복을 늘 갈구해왔다. 내 인생은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으니 이제부터라도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믿었다. '시작'을 '불행'이라고 느끼는 나 스스로가 안타깝지만 모든 시작이 늘 두려움은 아니었으니 내가 느끼는 이 불행은 필연적인 것이 아닌 이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오는 선택적인 것이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2020년이 절반을 향해 가고 있다. 누군가는 늦었다고, 누군가는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는 나의 스물 다섯 여름에, 행복해지려고 발버둥 치는 적어도 행복의 근사치에 가까운 사람이 되어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마친다.
출근하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시간까지 약 2시간. 나는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