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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Feb 01. 2021

1. 운동 젬병이 요가를 만나다.

<내 사랑 사바아사나>


 나는 어릴 때부터 몸으로 하는 것, 운동 계통에 특히 재능이 없었다.

학교 체육교과 필수과정으로 달리기, 소프트볼(여자야구), 농구, 발야구, 수영 등 수없이 많은 운동 종목을 겪어내야 했고 내 체육 점수는 늘 바닥이었다.

 춤도 어찌나 못 추는지 몸치에 남들 앞에서 춤을 춰보거나 클럽이나 나이트에 가서 춤을 추며 즐겁게 놀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여기까지 쓰고 기억을 더듬어 보니 딱 한번 미국 여행 중에 클럽에 가서 춤이 아닌 몸을 흔들며 놀아보았던 추억이 있다.)


 한평생 나는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 몸을 쓰지 않는 지식 노동자로 살아왔다. 어릴 때도 누워서 책을 읽고 엎드려서 그림(낙서)을 그리면서 와식생활을 일상으로 삼았다. 몸도 허약해 대부분 누워서 지냈기 때문에 별명도 연체동물이었다. 유연해서가 아닌 누운 생활을 너무 많이 해서 엄마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참고로 운동에도 젬병이지만 나는 몹시 몸이 뻣뻣한 사람이다.


 직업 역시 그냥 일반 회사원으로 몸을 전혀 쓰지 못해도 손과 머리만 있으면 살아지는 업종이다.

 그러던 내가 30대 중후반에 요가를 만나서 난생처음으로 내 몸을 내가 컨트롤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물론 처음에는 내가 몸을 컨트롤하기는커녕 내 몸은 팔 올려 다리 굽혀 같은 기본적인 명령어조차 수행해내지 못한 고장 난 몸이었다. 사지육신 멀쩡하게 붙어있어 평범하게 살았는데 팔을 쭉 뻗어내는 것도 어렵고 다리를 굽혀 투명 의자에 앉는 자세도 할 수 없었다. 내 몸은 그저 중력으로부터 몸을 세우는 정도로만 기능을 다하고 있었다.


 사람이 몸을 컨트롤할 수 있기 시작하니까 마음도 컨트롤해보고 싶었다. 몸을 쓰게 되니까 머리가 단순해지면서 복잡한 생각이 사라졌다. 조금씩 용기와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몸을 단련하고 있을 뿐인데, 일 년 전 혹은 그 전과 비교하면 조금씩 당당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세월의 힘과 나이에서 오는 노련함일 수 있지만 나의 기본 기질 자체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엄청난 강박증에 성격이 더럽게 급하고 어떤 일이든 내 손에 들어오면 문제없이 다 해결해놓고 싶은 피곤한 성격이다. 이 강박과 급한 성격은 국민학교 1학년때도 있었다고 하니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바뀌지 않은 나의 기질이다.


 그렇기에 나는 평균적으로 교감신경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는 현대 직장인이다. 현대인 대부분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항진되어있기는 하다. 

 요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사나라고 하는 몸의 수련'과 '프라야나마 라는 호흡 수련'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완전한 이완의 상태 사바아사나'라고 생각한다. 모든 아사나 수련의 과정은 완벽한 휴식과 이완의 사바아사나(시체 자세 : 의식 속에서 완전한 육체의 휴식)를 지향하고 있다.


 사바아사나에서 우리의 자율신경계는 부교감신경으로 전환된다. 수련을 오래 한 요기, 운동 전문가들은 아사나 수련 시에도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하여 수련 효율을 높이기도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수련 중에 호흡을 컨트롤하며 부교감 신경을 끌어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요가 전문가든 초보이든 아사나 수련이 끝나면 마지막에 사바아사나라는 자세로 심신의 완전 이완으로 들어간다. 그 상태는 내가 어떤 레벨이든 의식하지 않아도 내 몸은 자연스럽게 부교감신경으로 전환된다.


긴 휴식이나 깊은 잠을 자지 않아도 사바아사나만 잘 수행해도 정신이 아주 상쾌해지고 몸의 피로가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요가 디피카/ B.K.S 아헹가-

현대 문명의 스트레스는 신경의 긴장으로 오며, 사바아사나는 가장 좋은 해독제이다.


 현대 사회인들은 24시간 긴장의 상태이다. 잠을 자기 직전까지도 핸드폰으로 정보를 얻거나 친구들과 소통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친 교감신경 위주의 삶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밸런스가 깨진 생활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바아사나에 들어가는 순간 모든 사람들은 어린 시절 겪었던 그 편안함으로 빠져들게 된다. 5~15분 정도 되는 사바아사나 시간에 코를 골면서 잠드는 사람도 있다. 물론 사바사나는 의식과 무의식 중간 상태를 지향하기는 하지만 그 시간에 잠이 드는 것도 상관은 없다. 심신이 완전한 이완이 들어갔다는 것이다.(사실은 잠들지 않는 그 중간 상태가 가장 좋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완전한 이완에 빠질 수 있을까. 사바아사나의 몽롱한 그 시간 속에 있으면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날 수련이 힘들었을수록, 바깥 날씨가 추운 겨울이어서 요가원 바닥이 따뜻할수록 나는 거의 얼음이 녹아내리듯 편안하게 바닥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사바아사나와 형태가 비슷한 와선(누워서 하는 참선)에 대한 글을 소개하고 마무리하겠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 혹은 하루가 저물 때 머리도 가슴도 몸도 다 지치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든 누워서 참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참선 매뉴얼 / 테오도르 준 박 지음>


*사바아사나와 비슷하지만 누워서 참선하는 와선은 조금 다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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