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출근길 위로주, 모닝커피에 취하는 아침>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아침이 되면 출근을 해야 하고 업무도 해야 하니 부담스럽고 싫은 마음이 더 먼저 들지만 어차피 출근은 해야 하니까, 아침이 왔을 때 기분 좋을 경험을 몇 가지 만들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출근길에 모닝커피 한잔 마시기예요.
아주 사소한 모닝 루틴이지만 이 커피 향을 모르던 시절 출근길이 너무 지옥 같기만 했어요. 시작하는 아침부터 불쾌한 감정을 가득 안고 회사에 도착하니까요. 지금은 커피 한잔 빨리 마시고 싶어서라도 서둘러 집에서 나서기도 합니다. '나는 지금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이다. 출근길이 아니다.' 혼자 이상한 주문을 욉니다.
아침용 커피는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한 사약처럼 쓴 아메리카노를 선호할 때도 있고, 샷을 추가해 조금 쌉쌀하지만 고소한 라떼를 마실 때도 있어요. 최근에는 헤이즐넛 시럽을 넣은 달콤한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시고 있어요. 헤이즐넛은 커피를 잘 못 마시는 사람들이 시럽을 추가해 향으로 마시는 커피로 느껴져서 한 10년 넘게 향커피는 마시지 않았어요. 저는 커피를 잘 마시고, 잘 알고, 좋아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갖고 싶었나 봐요.
세상이 어떻게 보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시고, 나만 좋으면 되는데 이상한 허세가 있었네요.
스무 살 새내기 시절 학교 앞 카페에서 처음 마신 까만 커피는 헤이즐넛 커피였어요. 향이 구수하고 맛도 달콤해서 참 좋아했어요. 대학생이 되어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 모습이 참 좋고 어른의 세계에 들어온 그 순간이 너무 설레었어요. 내가 까만 커피를 마시다니 나도 이제 어른이 다됐다 싶었죠.
20년 만에 헤이즐넛 아메리카노를 시켜 향을 맡으며 출근을 하고 있는데, 그 고소하고 달콤한 향이 나를 대학생 시절의 행복한 기억으로 데리고 갔어요.
특정 향을 맡으면 그 향이 처음 각인된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하잖아요. 어른이 됐다고 참 좋아했던 그때를 떠올리며 가슴 몽글몽글하게 출근하는데 '하~ 지금은 너무 지치는 아침, 회사 가는 길. 퇴근까지 남은 시간은 9시간 30분.' 씁쓸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내일도 회사 가기 싫다며 걱정하는 스스로에게 '그래, 내일도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자.'라고 최면을 걸고 있는 이상한 어른이 되었네요.
뒷이야기>>>>
한 번은 별로 안 친한, 평소에 서로 경쟁상대로 여기는 동료가 할 말이 있다며 카페에서 만남을 청했어요. 속으로는 심장 쿵쾅거리면서 나간 자리에서 쎄보이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시켰습니다. '나 이런 사약 퍼먹는 여자다, 나 건들지 마라.' 그런 눈빛을 쏘며 에스프레소를 원샷했어요. 허세 부리고 쎈척 할때는 에스프레소 더블로 때려 마시는 게 답이에요.
에스프레소엔 설탕을 넣어 먹어야 하는데 너무 쎈척 하는데 집중하느라 쌩으로 마시며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독한 모습을 유지했어요. 이것이 바로 어른의 쓴맛.
어릴 때는 너무 잘 웃고 다녀서 사람들이 저에게도 살면서 슬픈 일이 있냐고 물을 정도였는데, 사회생활을 하는 어른이 되고부터는 항상 에스프레소를 퍼마신 직후처럼 인상을 팍 찌푸리며 살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