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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인미D Aug 30. 2023

37.생활 관성 때문에 생활 숙제를 미루고 말았어

<시간이 없어서 미루고 있다고 착각했지만>


 우리는 살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직장생활 이외에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다.

 나는 이것을 생활 숙제라고 부르기로 했다.(전문 용어는 아님.)


 나에게 조금의 여유가 있다면, 지금 미루고 있는 생활숙제들을 다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퇴근 후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독서도 하고 쓰다만 글들도 마무리해서 완성하고, 밀린 세탁물 처리나 고양이 화장실 대청소, 컴퓨터 하드 백업, 강의 준비 같은 일들을 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나에게 며칠간의 연휴가 생겼다. 

 그런데 막상 출근한 날보다 더 많은 생활 숙제를 했다고 말하기가 힘들다.

 쉬다 보니 한 없이 늘~어~져~서~ 다음을 기약하며 몇 가지 일들을 또 미루고 말았다.


 이것을 나는 생활 관성이라고 부른다.(마찬가지로 전문 용어는 아님.)

 우리 생활에도 관성이 있다.


 쉬면서 늘어지고 있으면 한없이 늘어진다. 그래서 주말에 멍하니 TV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하루가 통채로 사라지기도 한다. 아무것도 안 하기의 관성에 빠져든 것이다. 

 

 주말이나 며칠간의 휴식에서 쉬면서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결심만 해서는 그 어떤 일들도 시작조차 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 몸은 쉬고 있을 때 계속 쉬고 싶어 하고 멈춰 있을 때 계속 멈춰 있고 싶어 하며 놀고 있을 때 계속 놀고 있으려고 한다

 이게 애석하게도 안 좋은 것만 주로 생활 관성이 적용된다. 

 독서하고 공부하기에는 이상하게 생활 관성이 적용되지 않으며, 유일하게 중독되어도 나쁠 게 없는 게 독서와 공부인데 중독 조차 잘 안된다.

 오히려 독서와 공부는 끊임없이 쭉 하다 보면 집중력만 점점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도 물론 생활 관성 깨기가 도움이 된다.


 멍청하게 유튜브나 SNS를 보면서 하루를 날려 버리고 싶지 않다면 생활 관성을 깨트려야 한다. 이럴 때 의도적으로 몇 가지 일을 끼워 넣어야 한다.


 촘촘하게 계획을 짜서 실행하는 것이 주말에 늘어져서 뒹굴거리는 것을 못하는 것이 처음에는 힘들 수 있다. 예전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을 안 하면서 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겨내야 한다. 평생 그렇게 살 수는 없다.

 폰만 하고 그 시간이 지나면 허무하다. 남는 게 없다.

 건강하고 행복하기 위해 조금은 바꿔봐야 한다. 핸드폰만 하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길이 아닌 거 솔직히 우리는 모두 다 안다.

 처음에야 생활 관성깨기가 불편하고 힘들지 익숙하면 꽤 아니 상당히 행복(만족)에 가까운 느낌으로 휴일을 보낼 수 있다. 그리고 계속 해보면 힘들것도 없다.


 우선 재미없고 싫은 일은 시간을 짧게 할당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보상을 바로 뒤에 넣는 것이다.

 가령 맛있는 떡볶이를 배달시키면 배달이 올 때까지 40분의 시간이 있다. 이때 배달이 올 때까지 평소에 하기 싫었던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때 아주 어려운 책을 읽었다. 마감이 있는 시간 동안 상당히 집중해서 오히려 떡볶이가 배달 왔지만 끊지 못하고 계속 읽은 적도 많다.


 주말 아침 새벽 기상이 어렵다. 이때 나는 커피를 몹시 좋아하므로 전날 미리 마시고 싶은 캡슐을 골라놓고 아침에 일어나 기분 좋게 커피를 한잔 한다. 그리고 잠시 가볍고 재밌는 책을 읽는다.

 그 다음 골프를 치러 간다. 나에게 골프 치기는 너무 미션이라서 늘 가고 싶지 않지만 골프를 친 뒤 나에게 몇 가지 보상이 있어서 일단 나간다. 

 집순이가 주말에 집을 나서는 건 상당한 도전이다.

 골프를 치고 좋아하는 간식을 사고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른다. 골프는 숙제, 간식구입과 책 고르기는 보상이다.


 이런 생활숙제와 보상의 밸런스가 없었다면 집순이인 나는 하루종일 집에서 넷플릭스만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주말 하루는 넷플릭스로 채워진 아무것도 안 한 날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요즘 사람들은 단기 보상에 집착하게 되는데 그것의 정점이 핸드폰이다.

 재미없고 귀찮고 오래 걸리는 장기적인 투자와 노력은 불투명해 보일 뿐이다.


 그러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사실 단기 보상에 빠르게 집착하는 이유는 우리 뇌의 진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난 결과일 뿐이다.


 우리 뇌의 진화적인 관점에서 설명해 볼 수 있다. 보상을 평가하는 뇌기관은 장기계획과 신중한 추론을 판단하는 기관보다 먼저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단기적인 보상에 집착하기 쉽고 장기적인 계획이나 보상 지연을 하며 노력하는 것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 시스템대로 대충 동물적인 본능으로만 살고 싶은 사람이 없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귀차니즘의 본능인 생활 관성을 깨고 다음 행동으로 몸을 옮겨야 한다.


 과거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지금의 보상을 미룬다고 미래의 더 큰 보상이 주어지리란 보장이 없었다. 생존을 위해 그들은 단기 보상에 집착하고 그렇게 생존하여 진화된 우리도 같은 심리 메커니즘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당장의 보상을 미룬다고 죽지 않는다. 

 본능의 프로그래밍이 생존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현대 도시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순간 찰나의 쾌락과 보상을 지연하고 미래를 위해 인내와 계획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성공을 주기 때문이다.


 진화적인 관점과 사회 발전의 시스템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진화론에서 우리는 당장의 보상이 중요하도록 뇌에 프로그래밍되어있지만, 사회 시스템에서는 그 본능을 거스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사람에게 성공의 열쇠를 안겨준다. 

 내 본능이 원하는 것 반대로 행동하면 모든 인생이 잘 풀린다고 보면 된다.

 여기는 사피엔스가 살던 사바나가 아닌 현대 도시공간임을 기억하자.


 주말, 연휴, 긴 휴가에서 우리는 생활 숙제를 미루던 스스로의 나약함을 많이 지켜보았다.

 여유란 한없이 길게 주어진다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는 않다. 

 지치지 않는 적당히 타이트한 일정 사이에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더 것을 해낼 수 있다.


 결국은 시간이 있어도 안 하거나 못하는 일들이 있다. 해야 할 일들은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팩트다. 하기 싫어서 생활 관성에 빠져있어서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은 짧게 나눠서 찰나에 해결한다.


 그 일들을 처리해놓고 나면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생활숙제를 미루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면 결국에는 만족감을 위해 지금 잠시 인내할 수 있는 참을성 근육이 생긴다. 더 큰 보상을 위한 만족지연이다. 


 익숙해지면 그 뿌듯함이 좋아서 미룸의 귀찮음을 견뎌낼 수 있고, 평소에 일을 거의 미루지 않고 처리해 낸 뒤 만족감을 기억하여 성실한 사이클이 반복된다.

 이 뿌듯한 만족은 도파민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만족스러운 상황에만 도파인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장기 목표 달성 시에도 도파민이 나온다.

 만족을 지연하여 얻은 결과를 통해 성공하고 발전하는 스스로가 기특하고 사랑스럽게 된다.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점점 상승한다. 

 만족지연과 장기목표의 결과를 얻는 정신적인 혜택이 바로 자존감의 상승이다.(자기 통제력과 자존감은 상당히 연결성이 많음.)

 인간은 짧고 쉬운 보상보다 어렵고 힘들게 얻은 보상에서 더 큰 만족과 자기애를 느낄 수 있다.


 연속된 잉여 시간은 사람을 늘어지게 한다. 생활 관성을 깨트리는 것이 늘 관건이다!


 그래서 몇 가지를 쪼개서 숙제를 나눠 넣어야 한다. 생활 숙제와 보상의 밸런스 있게 구성해야 한다.

 

 계획조차 귀찮아서 한없이 늘어져있다 보니 에라 모르겠다~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계획은 최소 하루전날 이루어져야 한다. 다음날은 생활에 관성이 작용할 틈 없이, 고민할 새도 없이 그냥 움직여버려야 한다.


 우리의 삶에는 늘 단기 욕망과 장기 욕망은  충돌하고 마찰한다. 

 그러나 우리는 의식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생활 관성을 깨트리면서.


P.S.

오바마 전 미대통령의 연설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

 "It's Okay. I procrastinate sometimes." (괜찮아요. 저도 종종 미뤄요.)


 인간에게는 미루고 게으르고 생활 관성에 빠지는 것은 거의 본능이다. 성공했고 어떤 틈도 안보이는 사람도 모든 면에서 성실한 것은 아니다.

이것이 위로가 될까?

 그래도 그 와중에 이들은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을 거스르고 대부분의 시간에서는 생활관성을 깨는 삶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sometimes 종종 미룬다는 것이다. 항상 미룬다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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