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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창 Feb 08. 2021

힘들었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유

F=ma





밤 11시 친구 녀석이 오랜만에 전화를 걸어왔다. 한잔한 것이 틀림없다.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드디어 포르쉐를 샀거든? 근데 그저 그래……. 그때처럼 좋을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그저 그렇지?”



과거 아르바이트를 하며 처음 알게 된 이 녀석은, 당시 나처럼 아르바이트나 각종 일을 해야만 생활을 할 수 있는 비슷한 처지의 녀석이었다. 혈혈단신으로 사회에 내던져진 껍데기만 어른인 녀석들......, 하지만 부자가 되겠다고 소리치고 다니더니 부동산을 배워 자격증을 땄고, 경매를 몇 개 따내고 법인을 차리더니 진짜 부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포기하고 타협해버렸지만, 이 녀석은 한결같이 외쳐대던 본인의 세상을 잘 지켜내고 사는 것 같았기에 부럽기도 했다. 


이 녀석은 당시(20대 중반) 내 또래 중에서 가장 먼저 차를 샀다.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힘겹게 돈을 모아서 중고 아반떼 MD를 샀었는데 ‘블루세이버’라는 유치한 이름까지 붙여가며 애지중지 타고 다녔다. 꽤나 행복해 보였다. 그러면서 이 녀석은 첫 차의 감동 때문이었는지, 단숨에 ‘부자가 되어 포르쉐를 타고 다닐 것’을 삶의 목표로 정해버렸다. 그때부터 입버릇처럼 부자가 될 것이라 말하고 다녔고, 결국 그 꿈에 착실히 다가갔다. 그렇게 꿈을 이룬 녀석이 나에게 그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나도 불편했던 고시원에서 코딱지만 한 원룸으로 이사 갔을 때의 감동이 지금 이것저것 갖추고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컸던 것 같았다. 


무슨 말로 위로를 해줘야 할까? 허무함이 삶을 잠식하고 있는 듯한 녀석에게......, 고민을 하다 나도 옛 생각에 젖어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게 나도 이젠 집 같은 데서 사는데, 왜 그 코딱지만 한 원룸이 더 좋았던 것 같지?” 신기해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우린 힘들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그때의 우린 지금의 모습을 꿈꿨지만, 왜 우린 그때의 꿈을 꾸고 있을까? 





부자의 삶 


한 번은 등산을 하다 우연히 부자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아저씨를 만나서 ‘부자의 삶’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등산 중에 앞서 걸어가던 한 아저씨와 쉬는 장소에서 몇 번 마주치게 되었고, 헉헉대던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그렇게 빨리 걸으면 금방 지쳐서 안된다며 본인 등을 보며 따라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를 따라나섰고, 그는 묻지도 않았지만 그의 삶을 줄줄 읊기 시작했다. 들어줬으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40대 가장으로 부모는 모두 돌아가시고 없다고 했다. 외로움이 묻어있는 쓸쓸한 얼굴에 전반적으로 초라해 보였다. 누가 부자라고 옆에서 말해주거나, 명품을 잘 아는 이가 아니라면 겉보기에 부자라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을 하셨는데(무슨 사업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수성가해서 사업을 확장했고 자산도 크게 불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시고 아들인 그가 사업을 이어받아 운영해보려 했으나 번번이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 이후, 급격하게 줄어드는 자산을 보며 겁이 나서 남은 돈으로 의정부에 큰 빌딩을 하나 구입했다고 했다. 그 빌딩에서 나오는 월세가 한 달에 3700만 원 게다가 대출도 하나 없다고 했다. 그렇게 그때 샀던 빌딩으로 여태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키우며 살아오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 9시-9시 30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10-11시 골프를 치러 간다. 그리고 인근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먹고 빠르면 오후 2시 늦으면 4시에 집에 들어온다. 그리고는 티브이도 보고 산책도 다니며, 멍하니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당시의 내 알람은 아침 6시 30시였고,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마치고 이런저런 할 일을 하고 방바닥에 누우면 밤 11시-12시였다. 아침에 알람 소리를 들으며 힘겹게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해야 하는 그 저녁시간이 나에겐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런 내가 그의 일상을 들으며, 부럽다고 연신 말했지만, 그는 절대 부러워할 삶이 아니라고 몇 번을 강조했다. 오히려 불행하다고 했다. 그가 가장 불행한 시간은 커피를 마시고 집에 돌아올 때였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집에 가서 또다시 할 것 없는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는 것, 그것의 무수한 반복. 그것은 큰 불행이라고 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끊임없이 밀려드는 듯한 ‘노동’을 해야만 살 수 있는 내 삶에 환멸을 느끼며, 노동 없이 사는 세상을 꿈꾸던 당시의 나에게, 그가 한 말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그에게 뭘 도전하거나 다른 일을 해볼 생각은 안 했냐는 말을 넌지시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업을 이어받아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며, 도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듯했다. 그렇게 한껏 웅크리고 살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그는 같이 산을 내려와서도 아쉬웠는지 막걸리와 파전을 사주며 허무함에 대해 토로했다. 그리곤 다음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나에게 막걸리를 사라는 말을 끝으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친구의 말에 갑자기 부자 아저씨가 생각이 났다. 부자도 아니지만, 건방지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가 왜 불행해했는지......, 가수 박진영도 노래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정이 되면 불안해지고 싶고 불안해지면 다시 안정이 되고 싶다고, 내가 그랬다. 그렇게 바라던 안정을 가진 것 같은데, 난 다시 불안해지고 싶어 한다. 안정적인 생활을 벗어나 해외를 떠돌며 여행자, 구도자, 운명을 시험해보고 싶은 삶, 불안하고도 모호한 모습을 갈망하는 것처럼.......









에필로그



낚시터에서 만난 괴짜 과학자


20대의 가난한 그는 삶에 지칠 때, 가끔 낚시터에 앉아 멍하니 강가를 바라보곤 한다. 한참 동안 물빛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세상이 단조로워 보였기에....... 그렇게 다시 세상은 단조롭다는 믿음을 챙겨서 전쟁터 같은 사회 속으로 다시 떠나곤 했다. 그날도 끊임없이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세상에 환멸을 느끼며,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에겐 있고, 또 없는 ‘돈’과 사회에 분노를 느끼며, 한숨을 푹푹 내쉬며 강가로 툭툭 걸어갔다. 하지만 그날은, 늘 가던 자리에 처음 보는 아저씨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앉아있었다. 자연스레 말을 걸어왔고 본인을 과학자라 했다. 괴짜 같은 느낌으로 끊을 새 없이, 정신없이 말을 뱉는 모습에 ‘잘못 걸렸다.’라고 생각하는 찰나,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괴짜 과학자: F=ma라고 들어봤어? 힘을 만들어내는데 질량과 가속도가 필요하단 소리지, 근데 왜 하필 가속도일까? 질량과 속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가난한 그: 네?(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며) 음...... 그런데 가속도라는 게 직관적으로 이해가 안 돼요.


괴짜 과학자: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와 300km로 달리는 기차는 밖에서 보면 그 둘의 차이가 확연히 나겠지만,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이 기차의 속도가 100km/h인지 300km/h인지 전혀 느끼지 못하지. 하지만 속도가 0~100km/h까지 0~300km/h로 변할 때는 타고 있는 사람에게도 그 변화가 강하게 느껴진단다. 가속도는 쉽게 말해서 변화라는 거지.


가난한 그: 아 네...... 그런데 갑자기 가속도는 왜.......


괴짜 과학자: 우리 삶도 변화할 때 행복이건 불행이건 느낄 수 있는 거란다. 세상을 좀 더 풍성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이 가속도처럼 ‘변화’라는 순간이란 말이지


가난한 그: 그러니깐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괴짜 과학자: 지금은 힘들겠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 넌 풍부한 감정들을 느낄 것이고, 그런 감정들이 머릿속에, 가슴속에 남아서 네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게다. 


가난한 그: 그런 날이 올까요...... 지금이 너무 버거운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 갑갑하고요.


괴짜 과학자: 그럼! 나중엔 편한 삶 때문에 지금을 그리워할 때도 올 거야


가난한 그: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편한데 지금을 왜 그리워해요?


괴짜 과학자: 중요한 건 변화라고 하지 않았냐.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 속도 그대로면 느낄 수 있는 게 없다고. 넌 지금 천천히 속도를 올려가고 있는 중이지, 그런데 충분히 속도가 올라서 더 이상 올라가는 게 힘들어질 때면 변화하는 지금을 그리워할 수 있지 않겠어? 


가난한 그: 잘 모르겠어요......


괴짜 과학자: 돈, 편함 이런 것들 모두 변화 속에 있고 그런 척도 중에 하나일 뿐이란다. 혹시 비우면 채워진다는 말 들어본 적 있니?


가난한 그: 당연한 말이잖아요. 


괴짜 과학자: 그래 당연한 말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도, 비우기보단 흘러넘쳐도 꾸역꾸역 들이 붓기만 하지. 그러면서 채워지는 순간을 그리워하고, 채워지지 않는다고 한탄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기 일쑤란다. 너도 나중에 삶이 무료해지고, 힘들었던 지금이 그리울 때가 되면 내 말을 떠올려보렴. 그땐 두려움으로 꽁꽁 싸매고 들이붓기만 하던 편한 생활을 한번 싹 비워볼 때가 온 것이지. 다시 채워보는 그런 경이로운 순간을 맞이할........


가난한 그: 일단 편해봤으면 좋겠네요.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아까부터 화장실 가고 싶었는데, 중간에 말을 못 끊어서....... 저 일단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괴짜 과학자: 그래그래 다녀오렴 중요한 말은 다 해줬으니, 난 약속 지켰다!!! 


가난한 그: 네? 무슨 약속이요?


괴짜 과학자: 너랑 한 약속~


가난한 그: 저랑 무슨 약속을 했는데요? 


괴짜 과학자: 그런 게 있단다. 얼른 화장실 안가??


가난한 그: 아! 네네 가요 가요



(다녀와보니 아저씨는 없었다. 흔적도 없었다. 마치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내가 이번 생을 계획하며 나에게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온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날, 이때 찾아와 주기로 약속했던.......



- 편함에 지친 어느 날 취한 채 TV를 돌려보던 중 EBS 과학 채널을 한참 동안 보게 되었다. 그렇게 떠오른 가속도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힘들었던 시절의 나에게 누군가 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았다 -









사진출처

https://pixabay.com/ko/photos/%EB%82%A8%EC%9E%90-%EA%B3%A8%EB%AA%A9-%EC%9D%B4%EB%B3%84-%EA%B0%90%EC%84%B1-%EC%83%9D%EA%B0%81-58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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