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 Lapres midi Oct 09. 2023

AI가 되기로 하다

갱년기 엄마의 독서 1

“플리마켓 갈래?”

“좋아!”

우린 이럴 때 잘 맞는다.      


“엄마 책상 앞에 붙은 사진이랑 지금의 너는 다른 것 같아” 

“과거 얘기는 왜 하는데?”

“지금은 아기아기한 모습이 다 사라진 것 같아서”

“제발 좀 아기 때랑 비교 좀 하지 마”

“......”

역시나 우린 잘 안 맞는다. 


하지만 이럴수록 엄마는 옛날이 그립단다. 내가 알던 그 아인 어디로 간 거니? 옛날이야기 꺼내는 걸 우리 아이만 싫어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며칠 전에 읽은 책에 나온 내용이다.     


“여태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아이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바라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내 아이를 제대로 직시하려면 기존 것을 다 버리는 방식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내 아이가 낯설어진 부모들에게/최정미) 

아이를 잘 파악하려면 과거를 그리워해서도 과거와 비교해서도 안 된다는 거였다. 지금의 아인 완전히 새로운 아이라고 생각해야 한단다. 사춘기 아이에게도 ‘낯설게 보기’가 필요하며 AI가 아이를 보듯 하라고.(난 이제 네 에미가 아니라 에이아이란다 너도 나를 그렇게 봐주면 좋겠구나.)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하루는 이렇게.

‘우리 엄마도 이러셨겠지.’ 하루는 또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 같다가도 이 길 또한 누군가 지나간 길이 었겠지 싶어 다시 힘을 내보는 나에게 주어진 오늘의 과제는 AI가 되는 것이다. 책은 또 이렇게 나에게 길을 내준다. 


온갖 감정이 휘몰아칠 때 숨통이 되어줬던 독서. 가장 암울했던 그 시간은 ‘닥치고 책’의 시간이었다. 에세이, 소설, 시, 만화, 인문, 신앙서적까지 사고 빌리고.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이 지금은 잔향처럼 내 삶에 남아 있다.(다시 읽는 다면 처음 읽는 듯하겠지만.) 지금 감정의 우물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도 다 독서 덕분이다.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독서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다는 간증 아닌 간증이 담긴 책들을 읽으며 설마 했었다. 닥치는 대로 읽어 봤지만 내 삶에선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기록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실행에 옮겨야 한다고. 갈수록 태산이 이런 걸까? 무언가 바뀌기를 바라서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아니어서 마음을 비우고 성실하게라도 읽어보자 했다. (통장이 텅장되고 가사탕진에 이를 정도로 구매도 독서도 성실히 했다.) 책장에 쌓여가는 책들만큼 내 안에서도 독서의 나이테가 생겨났고 그만큼 단단해진 내가 되어 너를 돌보고 책방을 돌본다. AI의 눈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