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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Lapres midi Sep 26. 2023

엄마는 하기 싫은 게 많고 딸은 하고 싶은 게 많고

체력도 젊음도 안 되는 갱년기 엄마의 고뇌

마음의 나이는 언제나 청춘일 수는 있어도 몸의 나이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를 수가 없음을 실감하는 요즘, 머리와 몸의 불화가 심해지고 있다. 왼손과 오른손이 따로 놀고 뇌의 명령에 대한 몸의 반응이 느려지는 것이다. 보기 듣기 판단하기 행동하기. 거의 동시에 진행되야 하는 일들에 미세한 시차들이 생기다 보니 실수도 잖아지고 다치는 게 일이다.(부딪히고 긁히고 채이고...) 잠을 못 잘 경우 이러한 증상은 더욱 심해지는데 어디가 큰 문제가 있어서라기보다 자율신경계의 노화라고 하니 더 서글프 뿐이다.  유난히 성질 급한 남편과 눈코뜰새 없는 육아 덕분에 머리는 조급해져 가지만 몸은 더뎌져가는 부조화적인 현상이 더해져 절망적인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운동 신경이 둔해도 워낙 겁이 많고 소심해서 뭐든 조심하는 편이어서 크게 다치는 일 없이 지금까지 무사히 왔는데 다치면 잘 낫지도 않은 나이에 사방팔방 상처와 멍 투성이다. 면역력이 조금이라도 떨어진다 하면 바로 구내염, 비염, 이석증이 고개를 들이민다.

“그러게 평소에 운동을 했어야지”

라는 폭풍 잔소리를 채찍 삼아 요즘에는 하루에 5킬로씩 걷거나 뛰고 있는데 이 마저도 내 맘 같지 않다. 며칠 좀 뛰었다고 이번 엔 허리가 몸살이다. 몸이 늙어간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할 때 밀려오는 절망감이란... 아침 일기를 쓸 때마다 생각한다. 뭐든 ‘천천히, 하지만 꾸준히’하자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실수를 줄이는 방법은 ‘천천히’에 익숙해지는 방법 밖엔 없는 것 같다. 끈기는 부족한데 완벽을 추구하는 타입이라 실수나 실패라도 하면 바로 포기. 그렇게 포기하다가는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아 이렇게라도 마인드 컨트롤 하는 중이다.

‘천천히 해도 좋으니 꾸준히 하자’     


이런 나와는 달리 폭풍 성장 중에 있는 딸의 에너지는 엄마가 감내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다행히 친구라는 족속들에게 에너지의 반 이상을 쏟고 있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도 힘이 남아도는지 하고 싶은 게 많은 딸. 최근엔 요리 영역까지 손을 뻗었다. 여기서 예상되는 건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엄마와 일을 치고 마는 딸의 전쟁이다.


“저녁 뭐 먹을 거야”

“계란말이 하려고”

“그래? 그럼 내가 하면 안 돼?”

‘당연히 안 되지. 달걀을 깨트리기라도 하면, 달걀물을 쏟기라도 하면, 파를 썰다 다치기라도 하면, 프라이팬에 데기라도 하면 어떡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나는 굉장히 마지못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래? 그럼, 해 봐, 그런데 조심해야 해”

이런 경우 지난해까지는 ‘무조건 안돼’였는데 사춘기 딸에게 ‘무조건’이 더 이상 먹히지도 않고 또 어느 시점에선 가르쳐야 할 일이기도 해서 엄마는 튀어나오려는 잔소리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고 한 치 떨어져서 지켜만 본다. 이따금 추임새를 얹어가며.

“어어어?”

“하~~~”  

“으~~~”

“오~~~”     

그렇게 완성된 계란말이를 식탁 위에 얹어 놓고 뿌듯해하는 걸 보면 ‘그래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는 거지’ 싶다가도 가스레인지 위부터 싱크대까지 이어진 흔적들을 보면 다시 복창이 터진다. 누가 보면 명절 전이라도 붙인 줄 알겠다. 뒷감당은 오롯이 나의 몫이니 좀 전의 생각은 온데간데없다.

“한 번 해봤으니까 됐지? ”

하지만 딸은 들은 척 만 척하며 사진을 찍고 아빠에게 자랑을 하고, 직접 포크로 찍어 먹여주기까지.


어느 날은 밖에서 모임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 친구랑 밥 먹어도 돼?”

“뭐 먹으려고?”

“내가 계란말이 해주려고”

허! 이건 아니지.

“엄마가 지금 갈게. 계란말이하고만 밥 먹을 수 없잖아?”

“그래도 계란말이는 내가 해줄 거야”

“그럼 엄마가 간 다음에 하자. 알았지? 기다려”

나는 모임을 급 해산하고 집으로 달려간다. '나도 네 맘 안다. 친구한테도 자랑하고 싶겠지. 너의 요리 솜씨를 뽐내고 싶겠지. 하지만 이건 아니란다. 보호자가 있을 때 얘기지.' 안 그래도  걱정 많고 소심한 엄마는 온 힘을 내서 달려간다.      


살다 보면 이런 일이 다반사다. 아이는 하고 싶은 게 많고 엄마는 하고 싶지 않은 일. 아이는 벌이고 엄마는 마무리해야 하는 일. 하지만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할 수 없는 일. 이런 일들 앞에서 엄마의 노화는 참 불리하다. 젊었을 때 나의 엄마가 그러셨다. 애는 빨리 나을수록 좋다고. 조금이라도 젊을 때 키워야 한다고. 그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지금은 내가 그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낳을 계획이라면) 빨리 나을수록 좋다고. 조금이라도 젊을 때 키워야 한다고. 체력이 국대급 아니면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마음만으로 애를 키울 수는 없으므로. 둘 중에 하나는 선택했어야 했다. 국대급 체력을 키우든지 젊을 때 해치우든지. 하지만 둘 다 놓친 나란 엄마는 기회가 닿는 대로 에너지를 충전하기로 한다. 급방전될지라도 조금이라도 더 충전해 둬야 아이와 함께 요리도 하고 뒤처리도 할 수 있을 테니까.


하고 싶은 게 많은 딸 덕분에 하고 싶은 게 없는 엄마의공간에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고마워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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