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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 Lapres midi Sep 14. 2023

엄마의 갱년기, 나의 사춘기 1.

나의 사춘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까마득하게 잊었던 옛날 일들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를 때가 있다. 어떤 기억은 반갑다. 이런 일도 있었지. 나도 모르게 향수에 젖는다. 하지만 애써 누르고 덮어두었던 기억까지 같이 떠오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할 수만 있다면 죽을 때까지 덮어두고 싶은 기억 중 하나가 아마 사춘기 시절의 나일 것이다. 딸의 사춘기를 접하면서 하루하루 ‘뜨악’ 하고 있지만 그때 그 시절의 나 또한 ‘뜨악’의 날들이었으니까. (인정!)



“우리 집 오늘 날씨는 어떤가? 맑음인가? 흐림인가?”

아침 식사 때마다 아빠가 하시던 말씀이다. 평소엔 엄하고 무서웠던 아빠도 눈치를 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사춘기 딸이었다.(그 외에는 딸이 아빠 눈치를 더 많이 보고 자랐음) 그런 면에서 어쩌면 호랑이나 곶감보다도 더 무서운 게 사춘기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농담이라지만 북한 김정은이 제일 무서워하는 게 중2 라잖은가. 오죽할까 싶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는 나의 사춘기. 대부분 잊고 지냈고 간혹 기억된 조각들은 상당히 미화된 것이라서 나는 나의 사춘기를 잘 보냈다고까지 생각했는데 딸아이를 마주할 때마다 열네 살의 내가 보인다. (네가 왜 거기서 나오는 건데?)      




이런 나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한 가지 뚜렷한 기억은 말대꾸한다고 혼났던 일이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한다고 자주 혼나곤 했다. 나는 할 말을 한 것뿐인데. 그렇게 따지면 요즘 나의 딸도 자신이 할 말을 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아이의 모든 말들이 말대꾸로 들린다. 우리 엄마도 그랬었구나 싶다. 나의 엄마는 ‘말대꾸’하는 딸을 끝까지 용납하지 못했고 그녀의 딸은 결국 말대꾸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기분이 나쁘면 입을 닫았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말을 하지 않는 딸이 되었다. 그때 우리 엄마 복창은 수십 번도 더 터졌지 싶다. 말대꾸하는 것도 못 참겠지만 침묵하는 딸도 쉽지는 않았을 터.


지금의 내가 바로 그 기로에 서 있다. 말대꾸하는 딸을 혼내기 시작하면 이 아이도 입을 닫을지 모른다. 언뜻 생각하면 덜 부딪히는 방법인 것처럼 보이지만 입을 닫고 문을 닫는다는 건 격변의 시간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외롭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랬고 나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때를 떠올려보면 서로에 대한 기억이 싹둑 잘려나갔고 입을 닫은 그 후의 시간은 까맣다. 그 시간 속엔 오직 홀로 남겨진 나만 있다. 나 스스로가 눈, 귀, 입을 다 닫아버려서 생긴 일인데도 나는 지독하게 외로워했고, 침묵으로 엄마 속을 뒤집으면서도 오히려 엄마를 원망했다.      



솔직히 나는 지금 두렵다. 그러한 시간들을 대물림해서 또다시 반복하게 될까 봐. 아이의 말대꾸를 듣고 있으면 조절 안 되는 내 감정이 두렵고, 이따금 선을 넘는 나의 분노가 아이를 망칠까 두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의 말을 무조건 들어줄 용기도 없다. 말대꾸를 다 받아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결과치를 모르기에 이 또한 내겐 숙제처럼 어려운 부분이다. 부모로서 적정선을 제시해야 하는 게 맞겠지만 그 적정선이라는 걸 찾기 위해 나는 매일 고민해야 한다. 양육에는 정답지가 없어서 더 힘들다. 다른 집 아이가 우리 집 아이와 다르고 다른 집 엄마가 나와 다르기에.


일단은 이해해보려고 한다. 나의 사춘기를 닮은 아이를 보며 그때의 내 감정과 기분을 최대한 떠올려 보려 한다. 그리고 그런 딸을 마주했을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내 밑으로 동생이 둘이나 있었기에 나의 엄마는 나에게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더 외로웠고 더 서러웠을 수 있다. 감당 안 되는 호르몬과의 전쟁도 힘든데 엄마와도 매일 부딪혀야 하는 이중적 갈등은 열네 살의 나에겐 버거운 싸움이을 것이다.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어차피 치러야 할 갈등이고 전쟁이라면 이제는 지혜롭게 싸우고 싶다. 지금 이 시기가 상처만 남기는 싸움이 아니라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아픔이기를 바란다. 그때의 엄마와 나는 그렇지 못했더라도 지금의 나와 너는 나의 과거를 되풀이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서로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고 서로를 외롭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같이 푸는 숙제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요즘 다시 책을 펼쳤다. 얼마 전 지인이 추천해준 <내 아이가 낯설어진 부모들에게>란 책을 읽으며 공부는 아이들만 하는 게 아님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중이다.


모든 아이는 반드시 어느 순간 부모 말에 대꾸하고 대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걱정하고 불쾌해하지 말자.
... 그리고 대든다라는 표현부터 바꾸기를 추천한다. '대든다'라는 단어에는 부모를 무시하고 무례하게 군다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다.
이 말을 '자기주장을 한다'로 바꿔보자. ...
자기주장을 잘하는 것은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능력이다.
최정미 <내 아이가 낯설어진 부모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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